법원 “의료과실 손해배상 산정 한국식 평가 기준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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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10-28 08:00
수정 : 2020-10-30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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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범종 기자]
 

의료과실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사건에서 법원이 기존에 사용하던 '맥브라이드 평가표' 대신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으로 손해배상액을 산정한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4부(재판장 이종광 부장판사)는 “이모씨(33세)가 병원장 김모씨와 담당의 장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사건에서 맥브라이드 평가표 대신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을 적용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고 지난 25일 밝혔다.

이 사건은 이씨가 지난 2013년 11월쯤 김모씨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CT 유도 신경치료를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이씨는 다시 우측 허리 통증이 심해져 지난 2015년 5월께 다시 김씨의 병원을 찾아갔다.

진단 끝에 장모씨는 이씨에게 표준적인 디스크 수술법을 권했으나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 신경감압술로 시술하기로 결정했다. 1차 수술 후 이씨는 왼쪽 엄지발가락과 발목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장씨는 요추와 천추 부위에 감압술 및 수핵 제거술을 통해 이씨의 남은 디스크를 더 제거했다.

그런데 수술 후 이씨의 왼쪽 발목에 문제가 생겼다. 왼쪽 발목에서 근력저하가 발생해 발목을 들지 못하는 장애를 얻었다.

이씨는 곧장 법원에 병원장 김씨와 담당의 장씨를 상대로 “후유장애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장씨가 이 사건 1차 수술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요추 신경근을 과도하게 압박하거나 레이저를 잘못 조사해 시술 부위를 손상시킴으로써 이씨에게 족하수라는 후유장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서 1심 재판부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적용해 이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을 24%로 산정했다.

맥브라이드 평가표란 미국의 오클라호마 의과대학 정형외과 교수였던 맥브라이드가 정한 노동능력상실에 따른 평가방법을 말한다. 직업, 연령, 잘 쓰는 손과 잘 쓰지 않는 손 등의 조합으로 수천개의 노동능력상실 평가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장애의 대부분이 정형외과 영역에 편중되어 뇌 손상, 척수 손상, 중추신경계 손상 등에 있어서는 구분이 불충분하고, 1930년대 미국인의 직업을 위주로 정함으로써 현재 존재하고 있는 여러 직업 및 직업별 내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오늘날의 의학 처치와 그 당시의 의학 처치가 많은 차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혀 왔다.

이 평가표는 지난 1936년 맥브라이드 교수가 저술한 ‘노동능력 감퇴 평가와 배상 가능한 손상의 치료원칙’에 수록되었으며, 현재 우리나라 법원이 손해배상 사건에서 사용하고 있는 책은 1963년에 개정된 제6판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제외하고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사용하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

그 결과 1심 재판부는 “담당의 장씨는 이 사건에서 직접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질렀으며, 병원장 김씨는 장씨의 사용자로 장씨를 관리·감독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함께 이씨에게 후유장애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김씨와 장씨는 이씨에게 7725만원을 배상하라”고 지난 2018년 선고했다.

이 사건의 항소심을 담당한 재판부도 “김씨와 장씨가 이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을 져야 한다”는 1심 판결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손해배상액을 6864만원으로 책정했다. 위자료 1500만원까지 모두 포함한 배상액이다. 1심 배상액인 7725만원보다 1000만원 가까이 줄어든 금액인 것이다.

왜 그럴까? 맥브라이드 평가표를 적용해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한 1심과 달리 항소심 재판부는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을 채택해 노동능력상실률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은 의학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미국의학협회의 장애평가기준을 기본 모형으로 맥브라이드 평가표의 장점을 취합하고 단점을 보완해 장애율과 노동능력상실률을 산정한 표를 말한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맥브라이드 평가표는 현대 한국 사회와 간극이 있다”며 “대한의학회 장애평가기준이 우리나라 여건에 맞게 노동능력상실지수를 설정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기준으로 보인다”고 채택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는 “대학의학회 장애평가준을 적용해 이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을 24%에서 18%로 다시 산정했고, 기왕증(환자가 과거 경험한 질병) 기여도를 별도로 고려하지 않는 1심 법원과 달리 기왕증 기여도를 50%로 인정해 집도의 장씨의 의료 과실로 인한 이씨의 노동능력상실률을 9%만 인정한다”고 밝혔다. 다만 “의사가 권한 표준적인 수술법을 거절한 이씨 측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며 병원 측 책임을 80%로 제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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