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권리행사방해 무죄 사건

  •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2019고단458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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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광진 변호사
입력 : 2020-10-24 09:00
수정 : 2022-06-0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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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형법 제323조의 권리행사방해죄란,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을 취거, 은닉, 또는 손괴하여 타인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여기서 ‘은닉’이란, 타인의 점유 또는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 물건 등의 소재를 발견하기 불가능하게 하거나 또는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두는 것을 말한다(대법원 2017. 5. 17. 선고 2017도2230 판결 등 참조).

이하에서는, 차량을 할부로 구매하여 타인에게 전달하여 렌트업에 사용되게 하였는데 이후 차량이 불법 유통되어 소재파악이 곤란하게 된 경우, 최초 차량을 할부로 구매한 자를 차량을 은닉(소재를 알 수 없게 함)한 혐의로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 관계

가. A와 B는 화장품 판매 다단계 회사에서 같이 일을 하고 있었고, B는 A의 직속 팀장이었다. B는 위 회사에서 실적이 상당하였고, 외제차를 수시로 바꿔가며 운행하였으며, 한달 평균 800~9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나. B는 A에게 “할부금융을 이용하여 레인지로버 차량 1대, 벤틀리 차량 1대를 구입해 주면, 위 차량들을 타인에게 렌트하고, 매월 차량 리스료를 제때에 납부해줄 것이며, 차량 리스기간이 종료되면 차량 2대를 반환해 주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

다. B는 동업자인 C를 A에게 소개해 주며, 공동으로 운영하는 사무실에 데려가기도 하였다. 이들은 “차량 이용자 모집은 C가 할 것이고, C가 그 이용자들로부터 매월 운행료를 받아 주기로 하였다”고 말을 하였다. 즉 B, C는 A에게 “차량할부금의 적기 납부, 차량을 인수받아 운행할 사람들의 물색”이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취지로 말을 하였다.

라. 이에 A는 할부로 차량을 구입하고자 하였으나 카드 실적이 안 되어 자기 명의로 진행이 불가하였고, 이에 부친 명의로 차량을 구입하기로 하고, 부친인 피고인에게 이와 같은 내용을 설명하였다.

마. 이에 따라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차량할부금융회사)가 금 124,200,000원을 대출해주면, 이 사건 차량에 99,360,000원의 근저당설정을 하고, 피고인은 60개월 간 매월 25일에 원리금균등분할상황 방식으로 매월 2,576,982원을 상환하기로 하는 할부금융 약정을 체결하였고, 이 사건 차량은 곧바로 B, C에게 인도되었다.

바. B, C는 6개월 동안은 할부금을 피고인에게 지급하면서 약속을 지켰으나, 그러나 그 이후 A나 피고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임의로 차량을 다른 사람에게 처분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C는 해외로 도주하였다. 현재 이 사건 차량은 전전유통되어 D라는 사람이 소지하고 있다. D는 합의금을 요구하며 피고인의 차량 반환 요구에 불응하였다.

사. 피고인은 관할관청에 도난, 분실 자동차로 운행정지 명령 신청을 하고, D를 상대로 차량인도 민사소송 및 권리행사방해죄로 형사고소를 제기하였다. 피고인의 아들 A는 B, C를 상대로 사기죄로 형사고소하였다.

아. 한편, 피해자 회사는 피고인을 상대로 권리행사방해죄로 형사고소를 하였고, 대구지방검찰청 상주지청에서는 피고인의 혐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를 하였다. 공소사실은 다음과 같다.

“피해자 회사로부터 차량구입대금을 대출받고 이 사건 차량을 자신 명의로 이전등록을 하고 이 차량에 피해자 명의 근저당권을 설정하였으므로, 대출금 상환시까지 차량을 담보목적에 맞게 보관할 임무가 발생했음에도, 이 차량을 C에게 넘겨주어 소재를 알 수 없게 함으로써 피해자의 권리행사를 방해하였다”

자. 피고인은 필자를 찾아와 “차량이 은닉되는지 알 수 없었다, 몰랐다”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하였고, 이에 필자는 “피고인 역시 B, C의 범행에 대한 피해자이고, 이 사건 차량이 불법유통되어 은닉될 것이라는 사정까지 인식할 수는 없었다”며 피고인에게 권리행사방해의 고의가 없었다는 취지로 변론하였다.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3. 판결 요지

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하기 위하여는, 행위자는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권리의 목적이 된 자기 물건 등의 소재 발견이 불가능하게 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된다는 점에 대하여 고의가 있어야 한다.

기록에 의하여 알 수 있는 다음과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피고인이 권리행사방해의 고의로 이 사건 차량을 은닉하였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었다고 보기 부족하다.

① C 등은 피고인의 아들 A를 통해 피고인에게, 피고인 명의로 차량을 구입해 넘겨주면 타인에게 렌트하여 수익을 얻어 할부금을 납입하고, 할부금 납입이 끝나면 차량을 피고인에게 돌려주겠다고 제안하였다. 피고인은 그 제안을 받고 승낙하여 이 사건 차량에 관한 리스계약 등을 체결하였다. 이 사건 차량은 C 측이 직접 인수받았으며, 피고인은 이 사건 차량을 직접 점유한 일이 없다.

② 피고인은 C에게 이 사건 차량을 점유하면서 렌트사업을 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여객운수사업법위반이 되는지와는 별개로, 피고인이 이 사건 차량을 은닉할 의도로 한 행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차량을 점유∙운행하고 있는 사람은 C 또는 C로부터 차량을 대여받은 사람이므로, 피고인으로서는 소재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또한 저당권의 등록으로 대항력을 갖춘 담보권자(피해자 회사)는 그 저당권의 실행으로 임의경매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이 사건 차량을 점유∙운행하고 있는 자에 대하여 인도명령을 신청하여 그 점유를 확보할 수 있기도 하다.

③ 이 사건 차량의 소재파악이 현저히 곤란해진 것은, C가 중국으로 도피하면서 이 사건 차량을 임의로 처분함으로써 비로소 일어난 일이다. 이는 피고인이 C에게 차량을 넘겨주었다는 이 사건 공소사실 이후에 벌어진 별개의 행위이다.

④ 피고인이 C의 이 사건 차량 처분에 관여하였다거나, 이를 공모하였다고 볼 만한 증거도 부족하다. 나아가 피고인으로서는 이 사건 차량에 대한 거액의 할부금을 그대로 부담하는 상황에서, 처분대가를 분배받지도 아니한 채 C가 이 사건 차량을 처분하는 것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용인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때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무죄를 선고하고, 형법 제58조 제1항에 따라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4. 판결의 의의

이 사건 차량에 대한 소재파악이 어려워진 것은 C가 중국으로 도피하면서 차량을 임의로 처분한 새로운 별개 행위 때문인데, C 등이 이 사건 차량을 임의로 처분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피고인이 인식하기 어려웠고, 그러한 처분에 대하여 피고인이 관여하였거나 공모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아무런 대가를 분배받지 못한 채 거액의 차량할부대금만 부담하게 된 피고인이 권리행사방해의 고의로 이 사건 차량을 은닉하였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 피고인은 아들의 말을 듣고, 자기 명의로 차량할부금융 대출계약을 체결하고, 차량이 B, C에게 출고되게 한 것 이외에 사건에 관여한 것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차량이 은닉되었다는 결과에 주목하여 피고인에게 은닉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은 책임 원칙에 반한다고 생각된다(피고인은 차량을 소지하지도 못한 채 피해자에 대하여 차량할부대금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피고인과 피해자 회사 사이에 채무불이행과 같은 민사적 사안으로 볼 수는 있을지언정, 형사처벌될 정도의 위법성을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본 판결로써 합리적이고 타당한 판결로 보여진다.

5. 나가며

사실상 피고인으로서도 B, C가 제안한 내용이 정상적인 거래가 아니라는 점은 인식하였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피고인이 차량을 출고하게 된 것은 B, C의 불법적인 꾀임에 넘어간 것이 본질이고, ‘차량 렌트비를 내주고 5년 후 반환해주겠다’는 다른 누군가를 끝까지 추적하고 의심하지 않은 것을 피고인의 죄로 단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국가가 피고인을 벌할 만한 충분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을 통해 법은 원래부터 사악한 자를 처벌하고자 할 뿐 무지하거나 무구한 사람을 핌박해서는 아니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진=남광진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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