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낭기의 관점]박원순 성추행 사건과 '법이 죽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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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습니다.”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가 한 말 중 가장 가슴을 울리는 말이다. 성추행을 당한 지난 4년간 얼마나 큰 권력의 절벽을 느꼈고, 그 절벽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힘없고 약한 존재임을 절감했는지가 생생하게 드러난다. 사방을 둘러봐도 도움 받을 곳이라고는 없는 고립무원에 빠진 자신에게 그나마 기댈 곳은 법뿐이라는 한가닥 믿음, 그리고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할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가 엿보인다.

4년간 백방으로 피해 호소했으나 번번이 묵살

어떤 피해자의 호소가 이보다 더 절절할 수 있을까. 정말로 법이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사람에게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법은 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법을 빙자해 피해자를 두 번, 세 번 울리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법이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자를 보호하는가, 법은 과연 평등하고 공정한가, 법이 제 역할을 못한다면 그런 나라를 법치국가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소한 피해자는 7월 13일 첫 기자회견 이후 몇 차례에 걸쳐 변호인과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 전화 등 단체를 통해 성추행 실상을 밝히고 법의 도움을 호소했다. 피해자 측 지원 단체가 공개한 내용을 보면 피해자가 왜 ‘서울시장이라는 거대한 권력’ ‘힘없고 약한 저’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라는 표현을 쓰게 됐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박 시장이 집무실 안에 있는 침실로 피해자를 불러서 안아달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 “박 시장이  집무실에서 피해자와 셀카를 찍으며 신체를 밀착했다”고 피해자 측은 말했다. 박 전 시장이 자신의 속옷 차림 사진을 보내거나, 늦은 밤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 대화를 요구하고 음란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고도 했다. 심지어 박 전 시장이 운동을 마치고 시장실에서 옷을 벗고 샤워를 하는 동안 새 속옷을 챙겨주고, 남자 수행원이 있는데도 여성인 피해자가 시장실 안 별도 공간인 내실(內室)에 혼자 들어가 낮잠 자는 박 전 시장을 깨우는 업무를 했다”고 전했다.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기쁨조와 같은 역할”이라고 했다.

피해자 측은 피해자가 지난 4년간 박 전 시장의 성추행 피해 사실을 서울시 관계자 20명에게 털어놓고 인사 이동을 요청하는 등 몇 번이나 도움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피해자 변호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피해자는 성 고충을 인사 담당자에게 언급하고 동료에게 불편한 내용의 텔레그램 문자를 보여주고 박 시장이 보낸 속옷 사진을 보여주는 등 고충을 호소했다”고 했다. “이런 성적 괴롭힘에 대해 비서관에게 부서를 옮겨줄 것을 요청하며 언급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호소는 번번이 묵살됐다. “피해자의 호소에 서울시 직원들은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하거나 비서 업무를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로 보는 등의 반응이 이어져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피해자 측은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래” “예뻐서 그랬겠지”하는 직원도 있었다고 했다.

실정이 이랬으니 피해자가 ‘서울시장이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와 같은 표현을 쓰게 된 것이다. 그런 표현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피해자는 직접 작성한 글에서 “50만명이 넘는 국민들의 호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은 제가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도록 한다”고 했다. 박 시장 장례를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치르는 것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50만명 이상이 참여했음에도 장례가 그대로 진행된 것을 보고 ‘거대한 권력’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는 말이다.

수사기관 "공소권 없다" 진상 규명 외면

이뿐이 아니다. 피해자 지원 단체는 피해자가 박 시장을 고소한 직후 이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유출됐다고 말했다. 서울시경찰청은 피해자가 고소장을 제출한 뒤 이 사실을 경찰청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경찰에 고소하기 전날 서울중앙지검에도 박원순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면담을 요청했다. 따라서 경찰, 청와대, 검찰 중 어디에선가 고소 사실이 유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피해자가 호소한 대로 ‘법의 보호’를 받는 길은 무엇인가. 성추행은 물론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의 묵인·방조 행위, 성추행 고소 사실이 박 전 시장에게 곧바로 유출된 경위 등 이번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의혹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는 것이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국가는  제대로 된 수사 과정을 통해 진실이 밝혀지게 해야한다. 피해자는 인권을 회복하고 가해자는 응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라고 했다. 이 말 그대로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일은 이런 ‘법의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경찰은 성추행 혐의는 박 전 시장이 사망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성추행의 진실 여부를 밝히는 것은 이번 사건의 핵심이다. 피해자 지원 단체는 경찰에 “서울시 6층 (시장 비서실)에 있는 증거를 보전하고 수사 자료를 확보하라”고 촉구했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본질 문제는 외면하고 있다. 사망 경위를 조사하다 보면 성추행 혐의 여부도 조사될 것이라는 소리만 한다. 경찰은 박 전 시장 휴대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하면서도 성추행이나 고소 사실 유포가 아닌 사망 경위와 관련한 내용으로만 신청했다. 법원은 “사망 경위가 타살 및 범죄와 관련돼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소명이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기각될 수밖에 없는 영장을 신청한 것이나 같다.

고소 사실 유출에 대해 고발을 받은 서울중앙지검 역시 조용하다. 검찰이 고소 사실 유출 의심을 받는데 그 검찰이 이 수사를 맡고 있다. 이밖에 여성 인권 담당 부처인 여성가족부도 사건 초기 별다른 움직임을 보지지 않다가 뒤늦게 서울시 실태 조사를 한다고 했다.

경찰은 박 전 시장이 사망해 공소권이 없어서 성폭력의 진실 여부는 조사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피의자 사망 시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한다’는 검찰사건사무규칙을 근거로 든다. 검찰이나 경찰의 조사는 형사 처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소권이 없으면 조사하지 않는 게 원칙적으론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일반 원칙일 뿐이다. 그 의미도 피의자가 사망한 경우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한다는 것이지, 조사를 해선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일반 개인의 사사로운 범죄 혐의에 관한 문제라면 이 규칙대로 처리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개인의 사사로운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다음 가는 선출직 고위 공직자인 서울시장이 직무상 위력을 사용해 저지른 범죄 혐의 사건이다. 게다가 서울시 공무원들의 묵인·방조와 고소 사실 유출 문제까지 겹쳤다. 뭐로 보나 중대한 공적 사안이다. 성폭력 피해자 개인의 피해 구제를 넘어선 문제다.

국민적 관심사, 공소권 없어도 수사한 사례 있어

국가·사회적으로 중대한 사건은 형사 처벌과는 별개로 그 진상을 정확히 규명해 국민에게 밝히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실제로 그런 사례들이 있다. 1980~90년대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이 대표적 예다. 이 사건은 이미 공소 시효가 지나 공소권이 없고 따라서 형사 처벌할 수 없다. 검찰사건사무규칙에는 피의자가 사망한 때뿐 아니라 공소시효가 지난 경우에도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경찰은 지난 1년간 이 사건을 재수사해 용의자인 이춘재(57)가 여성 14명을 살해하고 다른 여성 9명에게 성폭행과 강도질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지난 7월 2일 발표했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성 접대 의혹 사건 사례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3월 법무부, 행정안전부 장관의 보고를 받은 뒤 김학의 전 법무부차관의 성 접대 의혹에 대해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공소 시효가 끝난 일은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고, 시효가 남은 범죄 행위는 반드시 엄정한 사법 처리를 해달라”고 했다. 이 지시 뒤 검찰은 검사 13명으로 특별 수사팀을 꾸리고 공소 시효가 끝난 김학의 성 접대 의혹 사건 재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이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을 공소권이 없음에도 재수사한 이유는 이 사건이 국민적 관심이 큰 중대 사건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김학의 전 차관의 성 접대 의혹 사건 진실 규명을 지시한 것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성추행 혐의 사건은 사회 특권층에서 일어난 국민적 관심이 큰 사건이다. 서울시장이라는 고위 공직자가 부하 직원에게 집무실에서 직무상 위력을 사용해 성추행을 저질렀는지, 서울시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묵인하고 방조했는지, 고소 사실을 수사기관 또는 청와대 공무원이 유출했는지는 국민이 당연히 알아야 할 중대 사안이다. 이런 사안에 공소권 없음이라는 규정 뒤에 숨어서 진상 규명을 피하거나, 수사를 어물거리는 것은 법은 물론이고 상식과 정의에 맞지 않는 일이다. 국가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 수사가 지리멸렬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피해자가 정확히 말했듯이 ‘거대한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가 거대한 권력인 이유는 서울시장이라는 직책 때문만이 아니다. 국회 과반 의석을 가진 집권 여당 소속의 시장으로서 현 정권의 상징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박원순 성추행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침묵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만약 문 대통령이 “고위 공직자인 서울시장에게 일어난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내지 못한다면 정의로운 사회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공소권이 없더라도 그대로 사실 여부를 가리라”고 했다면 어찌 됐을까. 지금쯤 검찰은 대규모 수사팀을 구성해 수사하느라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권력 앞에서 법 작동 멈추는 법치 실종이 진짜 문제

그러나 대통령의 침묵만이 문제가 아니다. 정권에 불리한 사건에 대해선 검찰이든 경찰이든, 일반 행정 부처든 권력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기는 현실, 그래서 권력 앞에서는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법치 실종이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다. 어느 정권에나 있었던 고질병이다. 현 정권 들어와서 그 고질병이 고쳐지는 듯했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든 여당이든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도 엄정히 대처해 달라”고 주문했을 때다. 그러나 이는 이미 옛말이 됐다. 대통령 말대로 살아 있는 권력 수사를 벌였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여권의 압박과 공세에 시달리다 식물 총장 신세에 처해 있다. 이게 우리 사회 법치의 현실이다.

박원순 성추행 피해자 측과 여성단체들은 7월 2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성추행 의혹을 포함해 서울시 공무원들의 묵인·방조, 고소 사실 유출 등 이 사건과 관련한 모든 의혹을 직권 조사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인권위는 7월 29일 직권 조사 하기로 결정했다.  과연 인권위는 제대로 할 것인가.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는 약자가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다’는 피해자의 호소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일 것인가. 인권위마저 피해자의 절규를 듣는 척하고 만다면 우리 사회에서 법은 진짜로 죽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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