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물대포 직사 위헌’...6년만에 바뀐 헌재 판단

  • “경찰이 소수의견 경청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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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0-04-26 21:25
수정 : 2020-04-2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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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제비로서는 능히 당장에 봄을 이룩할 수 없지만 그가 전한 봄, 젊은 봄은 오고야 마는 법. 소수의견을 감히 지키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고 민문기 대법관이 1977년 소수의견을 내면서 판결문 말미에 남긴 글귀다.

지난 23일 헌법재판소는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경찰이 농민 백남기씨에게 물대포를 일직선 형태로 살수(직사)한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2014년 이정미·김이수·서기석 재판관이 전한 봄소식이 뒤늦게 꽃을 피운 순간이었다.

헌재는 백씨 유족들이 직사살수 행위를 지시한 서울지방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직사살수와 그 근거 규정이 생명권 등을 침해했다"며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8대 1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농사를 짓던 백씨는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아 중태에 빠진 뒤 이듬해 9월 25일 숨졌다.

당시 경찰은 백씨의 머리를 향해 물대포를 직사했으며, 넘어진 백씨를 구조하러 접근하는 사람들에게도 20초가량 계속 물대포를 쏜 것으로 파악됐다.

유족을 대리한 민변은 "당시 직사살수 행위와 경찰관직무집행법·위해성경찰장비사용기준등에관한규정·경찰장비관리규칙 등 규정이 백씨와 가족의 생명권, 인격권, 행복추구권, 집회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해당 직사살수 행위가 백씨의 생명권 및 집회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직사살수가 불법집회를 막기 위한 것이라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지만, 수단의 적합성·침해의 최소성·법익 균형성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변호사협회 감사인 홍성훈 변호사는 “헌법소원에서는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데 있어 위헌 여부 심사기준으로 과잉금지원칙을 두고 있다”며 “구체적으로는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결정문을 살펴보면 헌재는 “직사살수 당시 백씨는 살수를 피해 뒤로 물러난 시위대와 떨어져 홀로 경찰 기동버스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아당기고 있었다”며 “당시 억제할 필요성이 있는 생명·신체의 위해 또는 재산·공공시설의 위험 자체가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히며 수단의 적합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침해의 최소성도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직사살수는 물줄기가 일직선 형태로 되도록 시위대에 직접 발사하는 것이므로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직사살수는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히 초래됐고, 다른 방법으로는 그 위험을 제거할 수 없는 경우에 한하여 이뤄져야 한다. 부득이 직사살수를 하는 경우에도, 구체적인 현장 상황을 면밀히 살펴 거리, 수압, 물줄기 방향 등을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내로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피청구인들은 현장 상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살수차를 배치한 후 단순히 시위대를 향하여 살수하도록 지시했다. 그 결과 백씨의 머리와 가슴 윗부분을 향해 약 13초 동안 강한 물살세기로 직사살수가 계속됐다”며 “이로 인해 백씨는 상해는 입고 약 10개월 동안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받다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직사살수를 통해 백씨가 홀로 경찰 기동버스에 매여 있는 밧줄을 잡아당기는 행위를 억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공익은 거의 없거나 미약했던 반면, 백씨는 직사살수로 인해 사망에 이르렀다”며 법익의 균형성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결국 경찰의 물대포 직사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백씨의 생명권과 집회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2016년 9월 25일 백씨가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물대포 직사에 대한 헌법적 판단은 과거에도 있었다. 헌재는 2014년 6월 26일 처음으로 물대포 직사에 대한 판단을 내놨다.

2011년 11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 참가자들이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고막이 찢어지고 뇌진탕을 입는 등 기본권을 침해 당했다고 주장한 사건이었다.

이미 집회가 끝나서 위헌 여부를 판단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살펴보더라도 “근거리 물포 직사 살수라는 기본권 침해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헌재의 공식 입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이정미·김이수·서기석 재판관은 “집회 및 시위현장에서 물포의 반복 사용이 예상되고, 이에 대한 헌재의 해명도 없으므로, 예외적으로 심판의 이익을 인정해 본안판단에 나아갈 수 있다”며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직사살수는 발사자의 의도이든 조작실수에 의한 것이든 생명과 신체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명백하게 초래한 경우에 한하여 보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며 “이 사건 물포발사행위는 그러한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되었다고 볼 만한 사정이 없었음에도 직사살수의 방법으로 이루어져 집회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밝혔다.

홍 변호사는 “헌재가 과거에 헌법적 판단을 했다면 백씨의 사망 같은 비극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경찰이 물대포 직사가 치명적이라는 재판관들이 우려를 경청했다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4년여 만에 선고되는 '직사살수 위헌' 백남기 유족 헌법소원 (서울=연합뉴스) 김도훈 기자 =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헌재 대심판정으로 입장하고 있다. 이날 헌재에서는 2015년 12월 고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이 경찰의 직사살수 행위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한 선고를 진행한다. 202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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