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진짜 범인은?

  • 이춘재 “내가 저질렀다” ... 경찰, 자백 신빙성 수사 중
  • 범인 지목된 윤씨 20년 옥살이 뒤 가석방 ... “경찰 고문으로 허위자백”
  • 2심 재판서 혐의 부인했지만 국선변호인은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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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10-13 16:28
수정 : 2019-10-13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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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56)의 DNA가 화성 연쇄살인 4, 5, 7, 9차 사건에 이어 3차 사건의 증거에서도 검출됐다. 이춘재가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되며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셈이다.

이런 가운데 8차 사건의 진범 논란은 계속 중이다. 논란의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오전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현 화성시 진안동)의 한 가정집에서 박 모(당시 13세)양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피해자가 성범죄를 당했고 목 졸려 사망했다는 점에선 다른 화성 사건과 공통적이지만, 피해자의 옷가지로 결박하거나 재갈을 물리지 않았고 노상이 아닌 집 안에서 시신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수사결과 8차 사건은 당시 모방범죄로 결론이 났고, 범인도 잡혔다. 2009년 8월까지 20년 옥살이를 한 뒤 가석방된 윤 모(당시 22세)씨가 바로 그 당사자다.

◆이춘재, 혈액형·음모형태 달라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가

살해 현장에선 남성의 음모 8개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음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다. 연구소는 정밀감식을 통해 음모에서 발견된 체액의 혈액형이 B형임을 밝혔으며, 방사능 동위원소 감별법으로 음모에서 티타늄을 검출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티타늄을 사용하는 용접공이나 생산업체 종사자 중 B형 남성들의 음모를 취합해 감정을 의뢰했다. 또한, 면식범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진안리 남성들의 음모도 함께 채취했다. 이때 이춘재의 음모도 채취됐다고 한다.

당시 경찰은 혈액형과 티타늄으로 용의자의 범위를 좁힌 뒤, 음모의 형태를 분석한 끝에 윤씨를 용의자로 특정한 것으로 보인다. 음모의 형태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고 한다.

이춘재는 혈액형이 O형인 점, 음모 형태가 다른 점을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배제됐다.

경찰에 체포된 윤씨는 조사 7시간 만에 자백을 했다. 경찰은 윤씨의 집이 피해자의 집과 가까웠고, 그 오빠하고도 동창이었던 점, 애인하고 헤어지면서 트라우마가 있었던 점 등을 고려했을 때 개연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살해 현장에서 윤씨의 지문도 나왔다고 한다.

증거들이 자백을 뒷받침하면서 윤씨는 결국 살인자가 된 것이다.

◆윤씨 “경찰 고문으로 허위지백 했다” ... 이춘재의 유의미한 진술

반전이 일어났다.

33년 만의 국과수 재조사 결과 화성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도 잠시, 유력 용의자 이춘재가 유일하게 범인이 잡혔던 8차 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하면서 진범 논란에 불이 붙었다.

경찰은 현재 이춘재 진술의 신빙성을 확인 중이라면서도 이씨가 8차 사건의 진범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의미 있는 진술을 했다고 밝혔다. 이씨가 사건 현장에 가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피해자 집 위치와 방 안의 침대, 책상 위치까지 정확하게 그림으로 그려가며 설명했다고 한다.

경찰은 그의 말이 사실일 경우에 대비해 과거 수사의 잘못이 있었는지도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과거 수사의 오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증거들이 잇따르고 있다.

경찰은 당시 ‘최첨단 과학 기술’이라는 체모 분석을 바탕으로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비과학적이고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정확도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신호철 전 시사인 기자는 지난 7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2003년 5월 수감 중인 윤씨를 면회했을 때에도 그가 결백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최근 경찰조사에서도 윤씨는 “내가 하지 않았다. 억울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8차 사건 2심 판결문에 따르면 윤씨는 “사건 발생 당시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음에도 경찰에 연행돼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1987년에 있었다. 당시 화성 사건의 2차, 7차와 4차, 5차 사건의 용의자 2명을 변론해 무혐의를 받아 낸 김칠준 변호사가 지난 8일 JTBC 뉴스룸에서 한 진술에서도 당시 수사 관행을 엿볼 수 있다.

“일주일간에 걸쳐서 거의 잠을 안 재우고 반복해서 가혹행위와 자백을 강요했다”

“(경찰이 심령술사가 지목한 용의자를) 화성연쇄살인사건 현장으로 끌고 갔다. 여기서 어떻게 죽였는지 재연하라고 계속 압박 했다. 그리고 나서 파출소 지하실에서 자백을 강요하고 그러다가 이분이 결국은 자백을 했다”

경찰은 과거 수사에 잘못이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 윤씨가 강압 수사에 못 이겨 허위자백을 한 것인지 밝혀져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수사관들은 강압 수사는 절대 없었다는 입장이다.

◆ 윤씨, 2심서 혐의 부인했지만 국선변호인은 유죄 인정

어찌됐건 수사단계서 자백을 한 윤씨는 1심 재판에서도 죄를 인정했다. 다만 2심부터는 자백을 번복해 범행을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판결문을 확인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윤씨가 범행을 부인 했음에도 당시 국선변호인은 피고인의 입장과 다르게 유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양형변론을 했다.

“피고인은 초범이고 갓 성년에 이르렀으며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구여서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게 됐으니 양형이 부당하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은 마음이 울적하였다는 단순한 감정에서 나이 어린 피해자를 목을 졸라 실신시키고 강간 후 살해하였다”며 항소를 기각하고 1심의 무기징역을 유지했다.

게다가 윤씨의 유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호소했던 국선변호인은 결심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당시 재판부는 다른 사건을 위해 법정에 있던 변호사를 대신 국선변호인으로 지정해 공판을 마쳤다는 것이다.

사건에 따라서는 억울하지만 유죄를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는 변론전략도 가능하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의 방어권이 충실히 보장됐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대법원도 “기록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살펴보아도 자백이 고문 등 강요에 의해 임의로 된 것이 아니라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없고 그 임의성을 부인할 아무런 자료도 발견되지 않으며, 자백의 신빙성도 넉넉히 인정된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당시 주심은 이회창 대법관이었다.

◆ 재심 가능성 두고 법조계도 의견 갈려

법조계서는 재심을 통해 실체적 진실이 가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과 재심 개시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엇갈린다.

재심은 언제든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무죄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가 필요하다. 형사소송법 제420조는 기존 판결의 증거물이 위조·변조됐거나 허위일 때, 무죄를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등에 재심이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 대한 재심을 청구해 무죄 선고를 이끌어낸 박준형 변호사는 지난 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 사건은 자백으로 사실상 유죄를 선고한 사건인데 (이춘재의 자백으로) 윤씨 자백의 전제가 무너진 것”이라며 “자백은 당시 상황에 맞게끔 얼마든지 꾸며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심 자체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8차 사건 수사가 명백히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와야 한다. 관련 증거들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존 기한인 20년을 넘기면서 모두 폐기됐다.
 

[사진=영화 '살인의 추억'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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