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국 칼럼] ​개인 일본과 국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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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로고스 대표변호사)
입력 : 2019-09-22 09:00
수정 : 2019-09-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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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서울대학 총동창신문을 받아본다. 8월달 신문에 오영원 니쇼가쿠샤대 명예교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오영원 동문(국어교육53-57)이 <영원의 사계>라는 책을 한국어와 일본어로 동시 출판하여, 이에 대한 기사가 난 것이다. 기사에는 일본에 있는 오동문과 이메일 인터뷰를 한 것도 실려 있는데, 그 중 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기자가 최근 한일관계과 관련하여 물어보는 질문에 대해 오동문이 답한 부분이다.

   “주변 일본인들의 반응은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다. 교육이나 문화계 분들과 교류가 많은데 변함없이 친절하고 한일관계에 대해 우리와 같은 심정으로 친선 교류를 원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정치 싸움으로 유리해지기 위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은 오히려 한국인들과 잘 지내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오동문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 기사를 보다 보니, 2014년 안중근 의사 추모 법요에 참여하기 위하여 일본 미야기현 구리하마시에 있는 대림사에 갔을 때 만난 일본인들이 생각난다. 왜 일본의 절에서 안의사 추모 법요를 여는 것일까?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 있을 때 안의사를 감시하던 헌병 간수 치바 도시치가 안의사의 인품에 감복하였다. 하여 치바 도시치는 제대 후 고향에 돌아와서 죽을 때까지 안의사 위패를 모시고 공양을 드렸다. 안의사는 치바 도시치에게 ‘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유묵도 써주었다. 안의사에 대한 공양은 치바 도시치 – 그의 아내 – 양녀(養女) - 대림사로 이어져왔는데, 1980년 대림사가 양녀로부터 받은 안의사의 유묵을 한국의 안중근 기념관에 반환하였다. 이를 인연으로 매년 9월 첫 주에 안중근 기념관측에서 대림사에서 여는 안의사 추모 법요에 참석하고 있는데, 2014년 나도 그 행사에 참석하였던 것이다.

추모 법요에는 구리하마시 뿐만 아니라 일본 각지에서 안의사를 추모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참석하였다. 그런데 안의사가 시해한 이토 히로부미는 우리에게는 조선 침략의 선봉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일본을 부국강병으로 이끈 지도자 아닌가? 그런 지도자를 죽인 안의사 추모 법요에 일본인이 참석한다고 하니, 나는 처음에 의례적인 참석이려니 하며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그러나 법요식이 끝난 후 만찬회 자리에서 같은 테이블에 앉은 일본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이 진심으로 안의사를 존경한다고 느껴졌다. 특히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데라시타 다케시는 2010년 직접 한국으로 와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것도 어깨에는 ‘세계평화 안중근 추도여행’이라는 휘장을 두르고 대림사에서 출발하여 시모노세키까지 걸어가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와 또 거기서 남산 안중근 기념관까지 걸어와 추념식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나는 그 때 이러한 일본인들에 감명을 받았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다. 전에 경기도 퇴촌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간 적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역사관을 돌아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을 고통이 내 가슴을 무겁게 눌렀다. 역사관에는 역사관을 돌아본 사람들이 쓴 글이나 남기고 간 기념품들이 있었다. 그 중에 많은 종이학이 있었는데, 이곳을 방문한 일본인이 두고 간 것이다.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쪽지 중에는 일본어로 된 쪽지도 많았다. 내용이 모두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된 충격과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미안함과 사죄를 담은 쪽지였다. 단체로 수학여행 온 일본학생들이 남긴 것도 있었다. 그때도 일본인들이 이런 역사관까지 찾아와 이런 글과 기념품을 남기고 간 것에 대해 놀라움과 고마움을 느꼈었다. 아마 개인적으로 일본인과 접해본 많은 사람들이 일본인의 친절함, 근면함 등에 호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본인들이 모인 일본이라는 나라는 왜 이럴까? 지금 아베 총리는 일본을 다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하여, 좀 거친 말로 해서 광분하고 있지 않은가? 오영원 동문 얘기처럼 정치인들이 자기들 정치 싸움에 유리해지기 위해 한일관계를 악화시키려 하고 있는 것인가? 개인 간에는 이웃이 싫으면 이사 갈 수 있지만, 일본이 싫다고 우리나라가 이사 갈 수는 없다. 싫든 좋든 우리와 일본은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서로 이웃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관계이다. 한일 간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금처럼 계속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그러기 위해선 지금처럼 정략적으로 한일관계를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에게 한일관계를 맡겨 놓을 수는 없다. 한일의 건전한 시민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겠지만 한일의 뜻있는 시민단체들이 만나 서로 머리를 맞대고 흉금을 터놓고 얘기하다 보면 작은 희망의 빛이 비추지 않을까?
 

[사진=양승국 변호사, 법무법인 로고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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