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달창’ 발언을 처벌 못하는 이유...

  • '달창'을 '누구'라고 꼭 집어 지목하지 않았기 때문
  • '혐오발언 처벌법' 제정 요구 거세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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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07-04 14:56
수정 : 2019-07-04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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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달창’ 발언에 대해 경찰이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달아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아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지난 1일 서울구로경찰서는 모 시민단체 대표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각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각하’란 범죄가 성립되지 않아 수사하거나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경찰이 이 같은 판단을 한 것은 명예훼손을 당한 구체적인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명예훼손은 구체적 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발언을 했을 때 적용되는 범죄인데 사회적 평가가 저하된 구체적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다.

법조계에서는 나 원내대표의 발언이 매우 모욕적이며 여성 차별적인 것을 물론 극단적인 혐오발언이라고 비판하면서도 경찰의 판단에는 잘못이 없다는데 의견이 일치된다. 향후 검찰의 처분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른 결과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게 대체적 견해다.

‘성매매 여성’을 비하는 표현을 사용해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비난했다는 점에서 분열과 선동, 극단적 갈등을 조장한 매우 부적절한 발언임에 분명하지만 ‘달창’이 누구인지 특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처벌대상이 되는 발언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형로펌 소속의 중견변호사 P씨(48, 사법연수원 25기)는 “명예훼손은 사실적시 혹은 허위사실로 인해 사회적 평가가 저하되는 피해자 반드시 특정되야 한다”면서 “나 원내대표의 경우 ‘달창’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지칭한 것인지 특정되지 않아 사회적 평가가 저하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처벌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2013년 5.18민주화운동과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지만원씨에게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지씨는 ‘5.18은 북한 특수군이 파견돼 조직적인 군사작전을 한 것’ 이라 주장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됐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지씨의 주장이 ‘역사적 사실, 평가와 배치된다’라면서도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아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판단했다. 

‘달창’이라는 말은 ‘달빛창녀단’이라는 말의 약자로,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스스로를 ‘달빛기사단’이라고 부른 것을 비꼬기 위해 극우 혐오조장 사이트인 ‘일간베스트’ 이용자들이 붙인 말이다.

지난 5월 11일 나 원내대표는 대구 달서구의 한 집회장에서 연설하며 “KBS기자가 (문 대통령에게)질문했다가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당했다”라고 말했다. 이 발언 때문에 나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을 매우 모욕적인 표현으로 비하하고 여성 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행법률이 ‘달창’과 같이 저질스럽고 모욕적인 발언조차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두고 일부에서는외국처럼 ‘혐오발언(Hate speech)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혐오발언은 정치성향, 성 정체성, 지역, 인종, 빈부, 성별 등을 이유로 비하와 혐오, 증오를 표출하는 발언을 말하는 것으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불법으로 처벌된다.

영국에서는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 인종관계법(Race Relations Act), 인종·종교증오법(Racial and Religious Hatred Act), 독일의 민중선동죄(Volksverhetzung), 미국의 증오범죄가중처벌법(Hate Crimes Sentencing Enhancement Act)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나라에서는 인종, 정치적 성향, 성 정체성 등을 이유로 ‘타인의 평등한 권리와 인격을 부정하고 저급한 존재로 취급하는 행동’을 하거나 ‘폭력찬미, 집단학살 미화, 인종적 증오’를 표현하는 것을 처벌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다.

UN국제인권규약 중 ‘자유권에 관한 규약’에서도 “관용, 시민적 예의, 타자의 권리 존중에 반하는 우려할 만한 표현”을 규제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많은 법조인들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폐지하는 대신 혐오발언을 처벌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면서 지난 2015년에 잠시 추진되다 중단된 ‘혐오발언 처벌법’의 제정작업이 재개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나경원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마치고' (서울=연합뉴스) 이진욱 기자 =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왼쪽)가 4일 오전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마친 뒤 동료의원들의 인사를 받고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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