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속 그녀 지우며 내 영혼도 병들어 가"

  • 르포, 여성인권진흥원 불법 영상물 지원센터 업무 현장
  • 정부가 직접 영상물 삭제…개소 7개월만에 2만3838건 피해 지원
  • "죽어도 되살아나는 좀비 같아…동영상 보며 구토‧두통 달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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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2-12 18:42
수정 : 2018-12-13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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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연락 온 남자 대학 동기에게 이상한 말을 들었다. "요즘 유명한 동영상이 있는데 너와 비슷한 것 같아." 보내주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망설이는 그를 재촉해 영상을 받았다.

'나면 어떡하지?' 영상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멎었다. 유포자 '그놈'의 얼굴도 그려졌다. 내가 살던 세상은 그날 무너졌다. 경찰에 신고하고 오래 전 헤어진 남자친구가 구속됐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3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나는 '○○대 △△녀'로 웹하드를 떠돌아 다닌다.

# 그녀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영상을 봤다. 화면 가득 헐벗은 그녀의 몸과 얼굴이 드러났다. 영상 속 그녀와 그의 사랑은 누구보다 진실해보였다. 그러나 그건 진실 아닌 범죄,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건 이들의 결말을 알기 때문일까.

'○○대', '자취방', 'c컵'···온라인 속 그녀의 흔적을 매일 찾았다. 뒤지고, 찾고, 삭제할수록 절망도 깊어졌다. 그녀의 영상은 좀비처럼 날 따라다녔다. 절망의 늪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녀는 A말고도 많다. 하루 8시간 모니터에 앉아 불법 촬영된 동영상을 보면서 구토와 두통을 달고 산 지도 오래. 나의 영혼도 서서히 병들고 있었다. (사례는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각색한 것)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불법 영상물 촬영이 갈수록 교묘하게 피해자들의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촬영된 리벤지 포르노, 각종 몰카 등이 기승을 부리고 상업적 목적의 '웹하드 카르텔'이 공고해지면서 이제 불법 영상의 피해자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닌 바로 여기, 지금 내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내가 불법 촬영물의 피해자라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게 뭘까.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는 포털, 웹하드 등에서 내 영상이 사라지는 일 아닐까.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운영하는 불법 영상물 삭제지원센터는 이런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됐다. 몰카 범죄에 대한 여성들의 피해가 커지자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직접 불법 영상물을 삭제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30일 출범한 센터는 개소한 지 약 7개월 만에 2만3838건의 피해를 지원했다.

센터에 따르면 불법 촬영 영상물 피해의 70~80%는 배우자나 연인이 찍고, 헤어짐을 복수하기 위해 인터넷에 공개한 리벤지 영상이다. 회사·학교 등 일상적인 장소나 지하철·공공장소의 화장실·모텔 등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장소가 몰카의 피해 현장으로 둔갑하는 경우도 많다.

박성혜 삭제지원팀장은 피해 여성 대부분은 "어느 날 눈 떠보니 '○○녀'라는 몰카의 피해자가 됐다"고 말했다. 10년째 피해 영상을 지우러 다니는 여성, 헤비 업로더(파일 대량 유포자)에 걸려 하나의 영상이 다른 타이틀로 2000건이나 유포된 사례도 있다.

박 팀장은 "영상물 삭제는 죽여도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좀비와 싸우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성매매 피해 여성의 현장 지원 업무를 하다 이 팀에 합류했다. 그는 "가정폭력, 성매매 등 거의 모든 폭력의 종착역이 디지털로 귀결되고 있다"며 "디지털 성범죄 피해를 지원하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폭력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센터 직원들은 매일 아침 컴퓨터를 켜고 구글에 ' ○○녀', '여친 ○○', '섹시○' 등과 같은 단어를 검색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피해 영상을 확인한 뒤 영상에서 가장 화제가 될 만한 키워드를 ‘남성의 시각’으로 유추해 유포범위를 검색하는 일이다.

박 팀장은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뒤에 100%는 유포불안을 호소하기 때문에 경찰보다 우리 팀을 먼저 찾는다"면서 "키워드를 정확하게 유추해야 영상의 존재여부, 유포범위, 삭제계획 등을 잘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여성으로서 무척 괴로운 일이지만 팀원 모두 일한 지 반년 만에 키워드 유추의 달인이 됐다"고 덧붙였다. 

키워드를 찾았다고 영상 삭제가 일사천리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몰카가 게시된 음란 사이트 중 대부분은 중국과 미국 등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다. 해외 기반 서버에서 유포되는 경우에는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기 때문에 삭제가 매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해당 사이트에 이메일을 보내 삭제를 요청한다.

박 팀장은 "수사기관과 공조해 삭제 지원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해외 사이트에서는 피해자 요구에 미온적"이라면서 "항의 메일을 너무 많이 보내니까 (삭제팀) 아이디가 차단당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좌절이 많았던 만큼 맷집도 강해졌다. 그는 "해외 각 사이트마다 아킬레스건을 찾아 접근하는 노하우도 생겼다"면서 "가령 미국에서는 아동 포르노를 강력하게 단속한다는 점을 이용해 해당 사이트에 '한국인이 등장한 피해 영상을 안 지워주면 게시된 아동 포르노를 신고하겠다'고 압박해 삭제에 성공한 적도 있다"고 했다.

[아주경제 DB]


아이러니한 건 센터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피해자들이 정작 경찰에 수사를 요청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점이다. 박 팀장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자기 영상을 안 봤으면 좋겠는데, 수사를 시작하게 되면 경찰에 자기 영상물을 증거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이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해자들이 원하는 건 하루라도 빨리 내 눈에서, 검색창에서 자신의 영상이 사라지는 것"이라면서 "지금과 같은 사후 처리방식으로는 한계가 너무도 분명하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나 절실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작업이지만 영상을 지우기 위해 봐야 하는 것도 엄연한 2차 피해"라고 강조했다. 삭제지원팀이 성인지 감수성에 얼마나 예민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점 때문에 33㎡(10평) 남짓한 삭제지원센터는 철저하게 '금남' 구역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담팀 4명, 삭제지원팀 8명 등 12명 모두 여성이다.

박 팀장은 "피해자 정보 유출 등을 우려해 팀장을 제외한 근무자는 모두 비공개"라면서 "남성 팀원을 기피하는 건 아니지만 피해자들이 삭제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곳에 남성이 있다는 사실을 굉장히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이어 "삭제 요청을 너무 많이 하다보니 팀원 역시 신상공격, 웹하드 블랙리스트 등재, 일부 남초 사이트 저격 대상 등 다양한 위험성을 감수해야 한다"면서 "보안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 순위"라고 말했다. 실제 이러한 점 때문에 기자의 방문도, 취재도 매우 어려웠다.

그는 "일반 여성들의 일상생활 촬영물이 포르노로 팔리고, 이로써 수익을 얻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절대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헤비업로더들은 일종의 '디지털 포주'"라고 강조했다. 그는 "영원한 삭제는 사실상 존재할 수 없다"면서 "입법, 사법, 행정 지원이 동시에 이뤄져 더 이상 피해자의 눈물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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