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그대로의 선거제?···어긋난 역사들

  • 독재정권 몰락 가져온 10대·12대 총선…득표 앞서도 의석수 뒤져
  • 국회 사회 갈등 조정 기능 상실…시민 나선 민주항쟁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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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10-21 17:38
수정 : 2018-10-2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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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에서 전국 570여개 시민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정치개혁공동행동'이 '2018 연내 선거제도 개혁'을 촉구하며 범국민행동 계획을 선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본격 활동을 앞둔 가운데 실제로 선거제도 개편이 이뤄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정의당 등은 연내에 민심이 그대로 반영되도록 선거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거대양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다소 미온적이다.

‘민심 그대로의 선거제’ 주장이 나온 것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1970년대 권위주의 독재 시절부터 꾸준히 제기돼 온 오래된 문제다. 게리멘더링(특정 당이나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이나 선거제도의 문제로 인해 득표율에서 앞섰음에도 의석수에 뒤지는 일도 있었다.

1978년 12월 치러진 10대 총선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박정희 독재정권의 막바지, 유신헌법 아래에서 치러진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이었던 신민당이 집권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을 득표수에서 앞선 것이다.

21일 대한민국헌정회에 따르면, 당시 신민당은 32.8%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공화당이 얻은 31.7%를 약 1.1%p 차이로 앞질렀다. 신민당이 공화당 보다 약 15만표를 더 얻었다. 하지만 의석수는 공화당(68석)이 신민당(61석) 보다 7석 많았다.

당시는 ‘1구 2인’의 중선거구제를 채택해 77개 지역구에서 154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다. 거기에 박 전 대통령이 임명하는 77명의 유신정우회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신민당이 공화당을 앞섰지만 신민당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국회 소집요구 정족수(77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의석이었다. 국민의 32.8%의 지지를 얻었음에도 국회 소집조차 할 수 없었던 셈이다.

1979년 5월 선출된 김영삼(YS) 신민당 총재는 이른바 ‘YH사건’ 등 국회 밖에서 강력한 민주회복 투쟁을 전개했다.

YH사건은 YH무역 여성노동자 170여명이 회사운영 정상화와 근로자 생존권보장을 요구하며 신민당사 4층 강당에서 농성을 벌인 사건을 말한다.

이는 박정희 정권의 야당 탄압으로 이어지고 결국 YS를 국회에서 제명하기에 이른다. YS 제명 사건으로 부마민주화항쟁이 일어나고, 박정희 독재정권은 막을 내리게 된다.

전두환 독재정권 당시였던 12대 총선도 불합리 하긴 마찬가지였다. 1985년 1월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35.2%를 득표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정치활동이 규제됐다가 해금된 야당 정치인들이 만든 신한민주당은 29.3%를 얻었다. 5.9%p의 차이였지만 의석수 차이는 81석이나 됐다.

당시 선거제도는 중선거구제(1구 2인)를 유지하면서 지역구에서 1등을 한 정당이 전국구(비례대표) 의석 3분의 2를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민주정의당은 전체 276개 의석 중 148석(전국구 61석)을 얻어 과반을 넘겼다. 신한민주당은 67석(17석)을 얻었다. 또다른 야당인 민주한국당이 19.7%를 득표해 35석(9석)을 얻었다.

당시 전국구 의석을 득표율에 맞게 골고루 배분했다면 민정당 119석, 신한민주당 88석, 민한당 55석으로 ‘여소야대’ 구도를 만들 수 있었다.

선거제도의 불합리함에도 신한민주당은 창당 보름 만에 제1야당으로 도약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국회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논의가 이뤄졌지만 여당은 ‘의원 내각제’를 주장했다. 대치가 이어지자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호헌조치를 통해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킨다.

이 사건은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으로 이어졌고, 전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내용을 담은 6·29 민주화 선언을 받아들이고 백담사에 쫓겨가게 됐다.

독재정권의 몰락을 불러온 두 총선 모두 민의가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고, 왜곡된 의석수로 이어졌다. 왜곡된 국회가 사회 갈등을 조정하지 못하면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민주화 항쟁이 이어졌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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