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값 받으려면 팔아와”…또 명절제품 강매 ‘갑질’

  • “사조그룹, 직원에 할당…미달땐 인사상 불이익” 청와대 청원
  • 대법 “판매 독려만으로 사측 책임 못물어…강제성 있으면 위법”
info
입력 : 2018-09-10 19:20
수정 : 2018-09-10 19:20
프린트
글자 크기 작게
글자 크기 크게

[사진=아주경제 DB]


추석 명절이 다가올수록 한숨이 많고, 깊어지는 직장인들이 있다. 명절 상여금·인센티브 등을 볼모로 자사 제품 판매를 직원들에게 강요하는 기업들의 ‘명절 선물세트 강매 갑질’이 더욱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명절 보너스를 위해, 혹은 명절 이후 불어닥칠 인사상의 불이익을 피하고자 임직원 가족혜택으로 포장된 영업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10일 법조계 및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직원들에게 명절 선물세트를 강매하도록 종용하는 회사의 갑질이 공공연한 관행으로 자리잡고 있다. 설·추석때마다 되풀이되는 사내판매 독려행위는 유통·식품·제약·레저·자동차 등 업종을 불문하고 이뤄지며, 그 대상도 본사 임직원은 물론 계열사·협력사·하청업체 직원 등으로 점차 확대되고 있다.

최근 이 문제가 불거지게 된 계기는 지난달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해 폭로된 사조그룹의 명절 선물세트 강제 판매 사건이다. ‘제2의 ○○○○식 밀어내기(사조그룹의 선물세트 직원 강제판매)’ 금지 청원에는 이날까지 1971명이 찬성했다.

해당글에 따르면 사조그룹은 2018년 추석 사판(사내판매) 그룹목표를 210억원으로 책정해 놓고, 각 계열사별로 판매목표를 할당해 직원들에게 명절선물세트 판매를 강요하고 있다. 선물세트 강매 관행은 10년째 되풀이되고 있는데, 목표량이 미달한 부서의 경우 인사상 불이익이 가해진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사실 선물세트 강매는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사들도 피해갈 수 없다. 홈플러스는 2009~2012년까지 명절 때마다 청소용역업체에 상품권 구매를 요청했다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경고 처분을 받았다. 아워홈과 금강제화 등도 명절 때 자사 선물세트나 상품권 등을 직원들에게 강매하도록 요구했다가 논란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 같은 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정한다. 해당 법률은 자기 또는 계열회사의 임직원으로 하여금 부당하게 자사 상품이나 용역을 구입·판매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의 유형인 ‘사원판매’로 간주하고, 어길 경우 시정명령·과징금 등의 처분을 내린다.

법조계에서는 사원판매의 위법성을 입증하려면 사안의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 대법원은 지난 2001년 대우자동차판매주식회사가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및 과징금납부명령 취소 상고심에서 사원판매 행위의 위법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해당 사건은 대우자동차가 판매활성화의 일환으로 대리급 이상 임직원과 전입 직원들에게 특정 차종의 구매를 강요해 공정위로부터 고발당한 사건이다.

대법원은 대우자동차 행위가 사원판매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원판매를 불공정거래로 규정하는 것은 회사가 임직원에 대해 가지는 고용관계상의 지위를 이용해 상품과 용역의 구입, 판매를 강제함으로써 공정한 거래질서를 침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며 “사원판매에 해당되려면 문제가 된 행위의 범위, 대상 상품의 특성, 행위자의 시장지위, 경쟁사의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즉 사원판매로 인해 임직원의 선택의 자유가 제한됐고, 가격과 품질이 중심이 되어야 할 거래질서가 침해됐다면 위법하다는 취지다.

그러나 단순히 구매를 독려한 것만으로는 사측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신문사의 판매국 소속 직원들이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경품을 제공하고, 구독자 확장 계획에 동참했다가 공정위로부터 사원판매행위에 해당한다며 고발당한 사건에 대해서는 “회사가 판매실적이 부진한 임직원에 대해 불이익을 준 정황이 없다면 사원판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해당 판결을 통해 “사업자가 임직원에 대해 자기 회사 상품을 구입하도록 강제하거나 판매량을 할당하는 등의 강제성을 갖고, 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 임직원에게 부담을 지우는 등의 행위가 있어야만 사원판매에 해당한다”면서 “단지 임직원에게 자사 상품의 구매자 확대를 위해 노력할 것을 촉구하고,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위법성을 판단하기 부족하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사조그룹 역시 사측이 임직원에게 판매행위를 얼마만큼 강제했는지가 위법성을 결정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사원판매는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공정한 시장경쟁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를 처벌하자는 취지”라며 “개별 기업들의 불공정행위 여부는 판단 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판매행위를 위해 얼마큼의 강제성을 동원했는지에 따라 위법성이 결정되는데, 단순히 판매 목표치를 제시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후원계좌안내
입금은행 : 신한은행
예금주 : 주식회사 아주로앤피
계좌번호 : 140-013-521460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