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인스타그램서 타인사칭 글, 명예훼손될까?

  • 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7도607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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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원 변호사
입력 : 2018-09-10 10:25
수정 : 2022-06-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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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같은 ID를 사용한다.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사이트마다 ID를 구분해서 기억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ID(특히 비밀번호)를 사용하면 보안이 취약한 사이트에서 ID와 비밀번호가 유출될 경우 다른 사이트 모두 해커에 의해 불법 로그인 될 수 있다. 가능하면 다른 ID와 비밀번호를 사용하려고 애는 쓰지만 쉽지가 않다.

몇몇 사이트는 다른 ID로 가입을 했다. 이미 다른 분이 같은 ID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닉네임도 마찬가지다. 가입할 사이트는 계속 늘어나는데 매번 겹치지 않는 ID와 닉네임을 찾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다. 결국 ID와 닉네임이 점점 흔하지 않은 특이한 ID와 닉네임으로 변경이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주변 몇몇 사람은 내 ID와 닉네임을 알고 있기도 하다. 얼마 전 모임에 갔더니 나의 과거 ID로 올라온 게시글을 보고 누군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게시글이 올라온 사이트에 가입한 기억이 없다. 나와 같은 ID를 사용했던 누군가가 작성했던 게시글인 것으로 보인다. 돌아오는 길에 검색해보니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내가 작성한 글이라고 보여지고 싶은 내용은 아니다. 내 ID를 사용한 사람에게 쪽지라도 보내 뭐라고 말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만약 나와 동일한 ID나 닉네임으로 글을 게시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을까?

2. 사실관계

피고인은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에서 닉네임 ‘D’를 사용하는 사람이다. 피고인은 2016년 6월 7일 15시경 주거지에서 일베에 접속하였다. 이후 피고인은 피고인 명의로 가입된 일베 닉네임을 피해자가 사용하는 네이버 닉네임 ‘D’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피해자를 사칭하여 마치 피해자가 직접 작성한 게시물인 것처럼 가장하여 일베 게시판에 14건의 게시글을 올렸다.

검사는 피고인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의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하였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고인은 다음과 같이 항변하였다.

피고인이 작성한 게시글을 올린 게시판은 실명이 아닌 별명(닉네임)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고, 그 별명은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으며, 피고인이 작성한 이 사건 글에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기재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피고인이 작성한 이 글의 내용만으로는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

3. 판결요지

가. 원심 : 서울북부지방법원 2016. 12. 20. 선고 2016노1395판결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1심과 2심은 피고인을 유죄라고 판단하고, 피고인에게 벌금 70만원을 선고하였다.

2심은 피고인이 작성한 일련의 글 내용만 보더라도 적어도 피고인 및 피해자와 같은 대학교 같은 과에 재학 중이던 동기들이 위 글을 보게 될 경우 위 글의 작성자로 피해자를 특정하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피고인이 작성한 글에는 ‘94년생 15학번이다’, ‘내가 지금 아예 쌩노란색 염색해 있는데’, ‘내가 15학번 94년생이고 과에 94년생이 나말고도 세명 더 있다’는 등의 사람을 특정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피해자의 대학교 동기들이 피고인이 작성한 14건의 게시글을 읽고 바로 위 글의 게시자가 피해자임을 특정할 수 있었고 각 글에 나타나는 다른 인물들 역시 특정할 수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또한 2015년 6월 경 피고인이 같은 과 동기 들과 엠티를 간 자리에서 피고인 스스로 동기들을 불러모아 G라는 사람으로부터 페이스북 메시지를 받았냐고 물어보는 등 피고인이 마치 피해자인 척 행사를 하며 작성한 글의 존재를 밝혔고, 같은 자리에서 피고인은 H 등에게 ‘피해자가 일베 게시판에 글을 올린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피해자가 이러는 걸 알리기 위해서 술자리에서 남자애들 몇 명에게만 그 글을 보여줬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사실이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피고인이 의도적으로 피해자와 같은 과 동기들에게 피고인이 작성한 글의 존재를 밝혔다고 보기 충분하다고 보았다.

나. 이 사건 판결 : 대법원 2018. 5. 30. 선고 2017도6075 판결 [정보통신망법 위반(명예훼손)]

대법원은 피고인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라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 보냈다.
판결의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은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2)여기서 ‘사실을 드러내어’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또는 진술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느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글을 올리는 행위에 대하여 위 조항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게시글이 그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보고하거나 진술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단순히 그 사람을 사칭하여 마치 그 사람이 직접 작성한 글인 것처럼 가장하여 게시글을 올리는 행위는 그 사람에 대한 사실을 드러내는 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에 대한 관계에서는 위 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도10112 판결 참조).

(3)위 법리에 의하면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사칭하여 마치 피해자가 직접 작성한 글인 것처럼 가장하여 각 게시글을 올렸더라도, 그 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사실을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므로 정보통신망법 제70조 제2항의 명예훼손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4. 사건의 의미

이 사건에서 게시물 작성자의 특정 여부 문제를 놓고 보면, 피고인이 올린 게시글의 작성자가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특정된다는 점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온라인 상에서 닉네임만을 사칭한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 상에서도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에게 마치 피해자가 문제의 게시글을 작성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사람을 사칭하여 마치 그 사람이 직접 작성한 것처럼 가장하여 게시글을 올리는 행위가 비난 가능성이 높은 행위라는 점은 분명하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매우 당황스럽고 불쾌한 경험이 될 것이다. 참고로 본 사건은 게시글 내용 자체가 문제가 된 것이지, 특정 사이트 자체가 문제라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나 이를 명예훼손으로 형사처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왜냐하면 죄형법정주의의 원칙 상 위와 같은 행위를 법에 규정된 ‘사실을 드러내어’라는 행위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은 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② 공공연하게 ③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어 ④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다. 죄형법정주의란 어떠한 행위가 범죄에 해당하고 그에 따르는 형벌은 무엇인지를 반드시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에 의해 규정되어야 한다는 형사법 상의 대원칙을 말한다. 국가의 자의적인 형벌권의 남용으로부터 국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법률에 의해 국가 형벌권을 통제하기 위한 원칙이다.

이 사건 판결은 죄형법정주의를 따른 판례이다. 이 사건 판결에서 인용된 앞서 일어난 다른 사건을 살펴보자(대법원 2016. 3. 24. 선고 2015도10112 판결). 이 사건은 피고인이 3년간 교제하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새로운 여자친구 A를 만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의 스마트폰에 소개팅 앱을 설치한 후 A씨 행세를 하며 A씨의 사진과 전화번호를 채팅 상대방인 불특정 다수의 남자들에게 넘기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이다.

이 사건 재판부는 ‘피고인이 A씨의 사진, 이름, 생년월일 등을 이용해 소개팅 앱에 가입한 후 피해자의 이름, 사진, 이름 등을 게시한 후 말을 걸어오는 다른 회원들과 대화하고 전화번호를 준 행위’를 ‘A씨가 소개팅 앱에 가입해 활동하며 다른 남자들과 채팅을 하고 전화번호를 줬다는 내용의 사실을 드러내어 적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하였다.
형벌법규의 해석은 엄격해야 하고 명문규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례이다.

5. 나가며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등의 SNS가 유행하면서 인터넷 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하는 다양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ID나 닉네임에서 더 나아가 유명인의 사진이나 계정을 도용해서 음란 사이트를 광고하기도 하고 불법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게시글 내용에 따라서는 도용을 당한 피해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예상하지 못한 비난이나 욕설을 듣게 되는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다. 나중에 사실이 밝혀져도 이미 입은 피해와 상처가 회복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는 중대한 범죄에 가까운 행위일 것이다.

그럼에도 현행법 상으로는 SNS 상에서 다른 사람을 사칭하더라도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지 않는 이상 처벌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물론 형사 처벌은 어렵더라도, 피해자는 자신을 사칭한 자를 상대로 불법행위를 이유로 하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피고를 특정하는 문제나, 실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사칭 이후의 행위가 사기 등의 다른 범죄에 해당될 경우 처벌을 받을 수 있음은 당연하다.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은 가장 중요한 원칙이지만 쉽게 간과되는 원칙이기도 하다. 감정에 반한다 하여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는 입법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법으로 해결하기 보다는 타인을 사칭하지 않는 성숙한 문화가 자리잡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서승원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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