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때리기? 소비자 알권리? …원가공개 판결 논란

  • 통신비·프랜차이즈·아파트 분양 등 원가공개 요구 거세져
  • 법조계 "관련 소송, 헌법소원 늘어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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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8-01 17:15
수정 : 2018-08-01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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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 DB]


정부가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정책 최우선 과제로 꼽으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기업의 원가정보’를 공개하라는 사회적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사법부의 잇따른 원가공개 명령 판결도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법원이 '정의·공익' 등의 가치를 앞세워 시장자유 원칙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원가공개'가 법원 판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4월 대법원의 통신비 원가정보공개 판결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방송통신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통신요금 원가 산정자료에 대한 정보공개 판결에서 참여연대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여 통신사들의 원가정보 공개를 명령했다. 참여연대는 2011년 5월 이동통신 3사의 통신비가 지나치게 비싸다며 정보 공개를 요청했다가 '영업기밀'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소송을 냈다. 

법원이 정한 원가정보 공개범위는 2G·3G 통신비 원가 산정을 위한 사업비용·손익계산서·대차대조표·영업통계 명세서 등이다. 이동통신 3사는 "원가정보에는 분기별 가입자수, 회선수, 고용인원수 등의 영업기밀 정보가 담겨있어 공개할 수 없다"고 반박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이동통신사의 전파 및 주파수는 공공재에 해당하기 때문에 관련 산업 규제가 필요하다고 봤다. 법원은 “정보가 포괄적인 항목이어서 공개하더라도 수익 및 비용의 구체적인 현황을 알기 어렵기 때문에 정당한 이익을 해치는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특히 이동통신 서비스는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적 자원을 이용하기 때문에 국가의 감독과 규제 권한이 적절하게 행사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산업계에서는 프랜차이즈 납품 품목 원가공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필수품목에 대한 원가공개를 의무화하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하면서 내년 1월부터는 프랜차이즈 본사의 납품원가 공개가 의무화 된다. 

개정안은 필수품목 공급가의 중위가격을 공개하고, 가맹점 사업자별 평균 가맹금 지급규모 및 매출액 대비 필수품목 구매비율 등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 관계자는 "필수품목은 업체의 개발역량과 영업 노하우가 집적된 결과물"이라며 "개정안 시행으로 실제 피해사례가 접수되는 즉시 헌법소원을 제기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사회적 움직임도 거세다. 시민단체들은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해야 아파트 가격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며 분양 원가를 공개하라고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원가는 2007년 주택법이 개정되면서 일부 공개됐다가 2012년 공개항목이 대폭 축소되면서 한 차례 부침을 겪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주택법은 택지·공사비·간접비 등 12개에 불과한 원가공개 항목을 건축비·기계설비·도배·타일공사비· 창호 등 세부항목을 포함한 61개 항목으로 늘리는 게 골자다.

대법원은 공공아파트의 경우 분양원가 공개가 적법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지난 2005년 경기 고양시 주공아파트 주민 A씨가 대한주택공사를 상대로 제기한 아파트 분양원가정보 공개소송에서 “토지매입보상비, 택지조성비, 공사낙찰가, 세대당 건축비, 건설원가, 민간에 판매한 택지 평당가격 등의 항목을 공개하라”고 명령했다.

당시 주공 측은 “분양원가 자료는 영업상 비밀에 해당해 정보공개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분양원가 산출내역은 주택건설 사업과 분양업무라는 직무와 관련해 작성하는 정보기 때문에 정보공개법 적용 대상”이라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한 정보는 정보공개 절차를 통해 공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앞으로 원가공개와 관련된 소송이나 헌법소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요금·부동산·프랜차이즈 외에도 택배요금·금융사 금리산정·고속도로 휴게소 음식원가 공개 등과 관련된 법안 개정안이 줄줄이 입법예고 됐기 때문이다.

한 로펌 관계자는 "법원이 규제의 범위를 가격으로 확장하면서 자유시장 경제 원칙과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며 "가격 통제권을 국가가 갖는다고 해서 반드시 공익이 실현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가공개가 가격안정에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개별 기업의 영업비밀 공개를 강제할 경우 주택품질 저하, 공급 감소 등의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며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해치는 위헌 소지도 큰 데다 공개한다 하더라도 원가의 사실여부에 대한 논란과 소송 등으로 막대한 사회적 갈등이 초래 될 수 있어 시장·생산자·소비자 모두에게 실익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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