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캐릭터, 성격·행동·목소리 제작 관여도 저작권 인정

  • '뽀로로' 친부확인소송
  • 서울중앙지방법원 2013.5.31. 선고 2011가합103064 판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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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상 변호사
입력 : 2018-06-10 09:00
수정 : 2022-06-04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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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들어가며

캐릭터 산업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카카오톡, 라인 같은 메신저 캐릭터 상품만을 판매하는 매장은 항상 사람들로 붐빈다. 거리에서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다스베이더를 만나는 것은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2015년 기준 세계 캐릭터 라이센스 시장 규모는 1,702억 3,800만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183조원에 달한다 (2016 캐릭터 산업백서, 한국 컨텐츠 진흥원). 그 동안 지면에만 머물던 만화 캐릭터들이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새 생명을 얻게 되고, 포켓몬고 같은 새로운 캐릭터 사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어 그 성장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캐릭터를 활용한 상품의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문구, 팬시, 인형, 완구, 의류, 잡화, 식품, 음료, 의약품, 생활용품, 도서, 게임, 음반은 물론이고 스포츠, 레저, 자동차 용품까지 산업 전반을 아우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캐릭터가 많은 사랑을 받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단 개성 가득한 외모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이 가진 고유의 설정과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몰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키마우스를 예로 들어 보자. 사람들은 미키마우스를 보면 사랑스럽고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 짧은 다리에 동그란 귀를 쫑긋 세우고 늘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 자체도 귀엽지만 특유의 호기심 어린 표정과 행동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언맨이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도 붉고 황금빛 도는 강력하고 멋진 슈트 뿐만 아니라 천재과학자인 동시에 억만장자라는 독특한 설정과 재기 발랄한 유머 그리고 대량 살상 무기를 생산하던 군수기업 CEO가 지구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성장과정이 어우러져 사람들을 매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캐릭터 디자인 외에 캐릭터를 구성하는 특유의 성격이나 행동, 목소리, 탄생 배경같은 무형적인 요소들도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이에 관한 흥미로운 판결이 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 캐릭터 산업을 대표하는 아이콘 ‘뽀로로와 그 친구들’이다.

2.사건의 배경

뽀로로와 친구들의 캐릭터 원화를 창작한 것은 ‘오콘’이라는 회사이다. 한편 시나리오에 맞는 음악과 음향을 입히고 성우를 섭외하여 목소리를 녹음한 것은 ‘아이코닉스’라는 회사이다. 이처럼 뽀로로 캐릭터의 원화를 그린 회사와 목소리를 녹음한 회사가 서로 다르다 보니 진정한 저작권자가 누구인지를 두고 법정 분쟁이 생긴 것이다.

오콘은 뽀로로와 친구들 캐릭터의 특징이 생김새(외모)에 모두 표현되어 있고 캐릭터가 가지는 성격 요소는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하므로 자신들이 단독 저작권자라는 주장한다. 반면 아이코닉스는 자신들도 시나리오 작업에 함께 참여 하였고 캐릭터의 구체적인 모습도 아이코닉스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 진 것이므로 공동저작권자라는 입장이다.

3.쟁점 및 법원의 판단

이 사건의 쟁점은 크게 두가지 이다. 우선 뽀로로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저작권법이 적용되는 저작물인지 여부가 문제된다. 나아가 저작물에 해당한다면 오콘의 단독 저작물인지 아니면 캐릭터 목소리를 녹음한 아이코닉스와의 공동저작물인지 여부를 따져 보아야 한다.

가.캐릭터도 저작물에 해당하는지 여부

우선 법원은 뽀로로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저작물이라고 보았다. 법원은 “인물, 동물 등의 생김새, 동작 등 그 시각적 표현에 창작자의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으면 만화나 영화 같은 원저작물과 별도로 캐릭터 자체도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이 될 수 있다(대법원 2010.2.11. 선고 2007다63409 판결 등)”고 보아 왔다.

뽀로로와 친구들에 나오는 캐릭터들 역시 에니메이션을 통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서 그 생김새, 동작, 성격, 말투, 목소리 등의 표현에 의해 창조적 개성이 드러나 있으므로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저작물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나.단독저작물인지 아니면 공동저작물인지 여부

그렇다면 뽀로로 캐릭터의 저작권자는 누구일까? 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캐릭터의 정의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캐릭터의 외모와 디자인을 캐릭터 표현의 핵심요소로 본다면 캐릭터의 성격이나 목소리 같은 것들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원화를 창작한 오콘의 단독저작물이 될 가능성이 커진다. 반면 캐릭터를 외모와 생김새뿐만 아니라 성격, 목소리, 특이한 동작 같은 여러가지 요소가 포함된 종합적인 존재로 본다면 캐릭터의 성격을 구상하고 음향과 독특한 목소리를 입힌 아이코닉스 역시 저작권자가 될 수 있다.

이에 관하여 법원은 “캐릭터란 만화, 텔레비전, 영화, 신문, 잡지, 소설, 연극 등 대중이 접하는 매체를 통하여 등장하는 인물, 동물, 물건의 특징, 성격, 생김새, 명칭, 도안, 특이한 동작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작가나 배우가 부여한 특수한 성격을 묘사한 인물을 포함한 총체적인 아이덴티티(identity, 정체성)을 말한다”고 하면서 “뽀로로 캐릭터가 가지는 외형적 모습 외에도 말투, 목소리, 동작 등의 요소 역시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캐릭터를 구성하는 구체적 표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캐릭터의 목소리를 녹음하는 행위, 캐릭터나 사물에 일정한 동작을 부여하는 행위, 애니메이션에 적절한 편집을 하는 행위 등도 모두 창작적 표현에 기여하는 행위이며 이 사건의 경우 아이코닉스는 캐릭터의 특유한 몸짓이나 말투, 행동양식, 성우의 녹음 등으로 형성되는 캐릭터의 목소리, 말투 등의 구체적인 표현 형식에 기여하였으므로 뽀로로 캐릭터는 오콘의 단독저작물이 아니라 오콘과 아이코닉스의 공동저작물이라고 결론 내렸다.

4.시사점

이 사건 판결은 한국 캐릭터 산업을 대표하는 뽀통령 뽀로로를 둘러싼 저작권 분쟁을 다룬 탓에 선고 당시에도 무척이나 화제였다. 이 판결은 캐릭터의 생김새나 외모 같은 외형적인 표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밖에 성격이나 설정, 특정적인 행동, 목소리의 표현에 관여하였다면 캐릭터의 저작권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판결이기도 하다.

단독저작권을 주장하던 오콘은 1심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심 재판부 역시 캐릭터의 창적적 표현에 양측이 모두 기여했으므로 오콘과 아이코닉스가 캐릭터에 대한 공동저작권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3나39638).

5.나아가며

과거에는 소설이나 만화와 같은 1인 창작이 가능한 매체를 통해 캐릭터가 만들어 졌기 때문에 저작권자를 가려내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캐릭터 제작 과정은 고도로 세분화되고 전문화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투입된다. 그 결과 저작물의 소유관계를 밝히는 것도 점점 더 까다로워지고 복잡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캐릭터를 기획한 사람, 원화를 그린 사람, 목소리를 불어 넣은 사람,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창작한 사람이 모두 캐릭터의 저작권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캐릭터를 둘러싼 복잡한 권리관계를 잘 정리하고 조율하지 않으면 캐릭터 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위험도 있다. 한국 로봇 캐릭터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태권브이 역시 저작권에 대한 관념이 희박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태생적 한계 때문에 권리자를 명확히 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리메이크 제작이 번번히 좌절되기도 한 사례이다.

한국 캐릭터 시장은 그동안 외산 캐릭터들의 전유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뽀로로, 타요, 라바, 코코몽 같은 아동용 애니메이션의 성공으로 인해 이제는 한국도 캐릭터 수출국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최근 카카오톡과 라인 캐릭터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면서 청소년, 성인 대상 캐릭터 시장에까지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21세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캐릭터 산업에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성공과 발전을 이루려면 수많은 창작자가 참여하여 만들어지는 캐릭터 저작권의 특징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를 둘러싼 저작권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획단계부터 철저한 준비를 통해 창작자들 간의 권리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사진=이정상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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