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4번째, 역대 ISDS로 풀어본 법조계 전망은?

  • 법조계 "엘리엇 주장의 전제 자체가 가정…위법 증명하기 어렵다"
  • 론스타, 하노칼, 다야니 이은 4번째 ISDS…'외국인 투자자 차별금지 조항' 위반
  • 전문가들 "중재 기관 역시 차별금지 행위에 대한 명확한 정의 없어…예측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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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5-09 09:00
수정 : 2018-05-1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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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아주경제 DB]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결정과 관련해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S)'를 예고했다.

ISDS는 기업이 상대방 국가정책 때문에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해당국을 제소하는 제도다. 정부가 엘리엇이 제출한 중재의향서에 응하지 않으면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ISDS가 시작된다. 엘리엇과의 ISDS는 론스타, 하노칼, 다야니 등에 이은 4번째 투자자 국가간 소송이다.

8일 정부 등에 따르면 엘리엇은 지난달 13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ISDS 중재의향서를 제출했다. 중재의향서는 ICSID에 제소하기 전 해당국 정부와 마지막 조정을 거치는 단계다. 법무부 관계자는 “해당 사항에 대해 복지부, 기재부, 금융위 등 관련부처와 협의중”이라면서도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데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 방향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엘리엇 요구에 응할 가능성이 낮다고 분석한다. 법무부는 2012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 의 중재 요청도 거부해 곧바로 소송 절차에 돌입한 바 있다. 정부 출신의 업계 관계자는 “엘리엇이 제출한 중재의향서만으로는 그들의 요구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을 것”며 “선례도 있듯 결국 (ISDS까지)가지 않겠느냐”고 전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에 금전적 손해를 끼쳤는지 여부다.

엘리엇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된 우리 법원의 판결을 근거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국민연금공단의 부패로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엘리엇 및 다른 삼성물산 주주들이 불공정한 손해를 입었다”며 “이미 대한민국 법원에서 삼성그룹 고위임원, 전 보건복지부 장관,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 등에 대한 유죄선고가 잇따랐다”고 주장했다.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계획 발표가 있던 2015년이다. 당시 삼성은 제일모직 주식 1대 삼성물산 주식 0.35대 비율로 합병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 국민연금공단은 삼성물산 주식 11.21%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삼성물산 주주들은 제일모직 주가가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며 반발했지만 국민연금공단은 내부 투자위원회 의결을 통해 합병에 찬성했다.

엘리엇 주장의 근거는 '국정농단' 판결이다. 지난해 서울고등법원 형사 10부는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들에 삼성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준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으로 기소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앞서 1심도 이 같이 선고했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국제소송분야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은 정부관계자들의 직무범위를 벗어난 판단에 대해 ‘유죄’를 물은 것이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정부 압력으로 뒤집혔다고 판단한 게 아니다"라며 “엘리엇의 주장에는 논리적 허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의 유죄판결은 엘리엇이 주장하는 손해 인과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에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는 주장도 있다.

ISDS 제도 자체도 쉽게 승부를 예측하기 어렵다. 지난 2013년 시작된 론스타와의 ISDS가 워낙 방대해 관련 경험이 축적된 만큼 승소가 가능하다는 낙관론이 있는 반면 ISDS 자체가 투자유치국에 불리하기 때문에 패소 가능성이 높다는 비관론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역대 ISDS 투자유치국 승소확률은 37%에 불과한 반면 다국적 기업 승소 확률은 53%에 달한다.

론스타와의 ISDS는 소송종합판으로 꼽힌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02%를 1조3834억원에 매입한 뒤 2007년 HSBC에 이를 5조9376억원에 팔기로 협의했다. 그런데 정부가 이 계약에 대한 승인을 미루는 사이에 세계금융위기가 왔고, 이로 인해 HSBS와의 계약이 무산, 2조원대 차익손실을 입었다는 게 론스타 측 주장이다. 이후 론스타는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외환은행(3조9157억원)을 넘겼다.

6년간 진행중인 이 소송은 소송가액만 5조5000억원에 달한다. 논쟁의 쟁점은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의 매각지연을 의도적으로 늦췄는지 여부다. 론스타는 ‘정부가 제 때 승인을 내주지 않아 2조원이나 손해를 봤고, 2조원을 재운용해 1조4000억원 가량을 더 벌 수 있었다’며 ‘한국 정부가 3조40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는 당시 론스타가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 등과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의도적인 지연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당시 정부는 “불법행위로 부당이득을 챙겨 내부조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바로 승인을 내준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라며 “론스타가 주장하는 배상액은 과거 수익률을 가정해 기회비용을 도출해낸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이지 않다”고 맞섰다.

또 다른 쟁점은 국세청이 론스타에 부과한 8000억원대 세금이 적절했는지 여부다. 론스타는 2001년 서울 역삼동 스타타워 등 국내 부동산을 거래하면서 약 4조6000억원의 이익을 냈고, 국세청은 이에 대해 8500억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BIT)’에 따라 한국 정부가 세금을 면제해줘야 한다는데 이를 어겼다며 기회비용을 포함해 1조7000억원을 배상하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지난해 ‘국내에 고정사업장이 없는 외국법인에 대한 과세는 부당하다’며 과세취소처분 판결을 내렸다. ICSID는 관련 판단을 올 상반기 내릴 전망이다.

아랍에미레이트(UAE)기업 하노칼은 지난 2015년 한국정부에 ISDS를 제기했다가 2016년 취하했다. 하노칼이 2010년 현대오일뱅크 주식을 매각할 때 현행법에 따라 대금의 10%인 1838억원을 원천징수로 납부했는데, 당시 국세청이 하노칼에 한-네덜란드 조세조약을 적용하지 않고 실질과세원칙을 적용한 것이 '한-네덜란드 투자보호협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정부 관계자는 “하노칼 측이 ISDS를 취하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면서도 “승소 가능성이 희박한 것이 주된 이유가 아니었겠나” 추측했다.

이란 엔텍합그룹 대주주 다야니 역시 지난 201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 과정을 문제삼아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S를 제기한 바 있다.

다야니가 소유한 엔텍합그룹은 2010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M&A)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엔텍합 측이 인수대금 인하를 요구하면서 대금지금 기일을 넘겨 계약이 해지됐다. 소송의 주된 내용은 한국이 '한-이란투자보장협정(BIT)'을 어겼기 때문에 계약보증금과 지연이자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ISDS 결과는 연내 발표될 예정이다.

앞서 제기된 3건의 ISDS 사례를 종합하면 다국적 기업이 주장하고 있는 공통적인 근거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차별적 대우 금지’ 조항이다. 이 기준은 투자유치국이 외국인투자자에게 기존 국제협약에서 규정된 최소한의 권리는 부여한다는 원칙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한국 책임이 인정되려면 정부의 행위가 국제위법행위로 인정되야한다"며 "다만 중재기관 역시 국제적 위법 판단 기준에 대한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재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형로펌의 중재 전문 변호사는 이번 사태와 관련해 “엘리엇이 승소하기 위해선 국민연금이 내부적으로 합병을 반대했지만 정부가 개입하는 바람에 결과가 뒤바뀌었다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해야 할 것”이라며 “삼성물산-제일모직 반대가 경제적으로 볼 때 훨씬 더 적절한 결정이었다는 전제를 입증하야 하는데, 전제 자체가 가정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이 위법했는지에 대한 판단 역시 현재 2심이 진행중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삼성물산 구 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제기한 '합병무효 소송'에서 "합병 과정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을 내놨다. 일성신약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당시 1심 재판부는 "삼성물산의 합병 목적이 부당하지도 위법하지도 않다"며 "합병 비율이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불리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합병이 포괄적 승계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지배구조 개편으로 인한 경영안정화 효과가 있으며 국민연금공단 의결권 행사 과정이 위법하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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