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의 법률이야기] ​‘니코틴 살해사건’ 형사재판에서 유죄 판단기준은?

  • ‘합리적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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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 변호사(법무법인 명경)
입력 : 2018-04-09 10:17
수정 : 2018-04-09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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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혼 여행지에서 니코틴을 주입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A씨가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다. 경찰은 보험금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하였다.

A씨는 지난해 4월 19세의 아내와 함께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도착 다음 날 그곳에 있는 한 호텔에서 아내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숨졌다고 신고했다. 그러나 A씨는 다시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말을 바꿨고 이를 수상히 여긴 일본 경찰은 부검을 실시하였다. 아내의 사인은 니코틴 중독으로 밝혀졌다. 사체에서 치사량에 달하는 니코틴이 검출된 것이다. 일본 경찰은 A씨 부부가 머무른 호텔 객실에서 순도 99.9%의 니코틴 원액과 의료용 주사기도 발견하였다. 그러나 A씨는 현지에서 아내의 장례까지 치르고 아무렇지도 않게 귀국하기에 이르렀다.

다행히 우리 경찰은 지난해 5월 범죄 첩보를 입수, 인터폴에 공조를 요청하고 일본에서 부검자료 등을 넘겨받아 A씨를 최근 검거했다. 조사 결과 A씨는 2017년 4월 14일 B씨와 혼인신고를 한 직후 보험에 가입한 뒤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A씨로부터 압수한 자료를 분석해 2016년 12월 20일 당시 여자친구였던 C씨를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실도 추가로 밝혀냈다.

경찰 관계자는 "A씨의 집을 압수수색해 범죄 관련 내용이 적힌 일기장 등을 확보했다"며 "A씨가 범행을 자살로 위장하려 했던 정황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집에서 발견된 일기장과 스마트폰에 살인계획을 자세히 기록하기까지 했고 니코틴 원액을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구매한 기록도 발견됐다.

하지만 A씨는 여전히 아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것을 도와줬을 뿐이라며 살인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과연 A씨는 아내에게 니코틴을 주입해 살해하였다는 사실에 대하여 유죄 판결을 받게 될까?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사재판에 있어 유죄의 인정’은 법관의 합리적 판단에 따를 때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범죄라는 확신이 들 정도의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 이러한 증거에 의한 심증의 형성은 경험칙과 논리법칙에 위반되지 아니하는 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도 되는 것이다. 나아가 간접증거가 개별적으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완전한 증명력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전체 증거를 상호 관련하에 종합적으로 고찰할 경우 그 단독으로는 가지지 못하는 종합적 증명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면 그에 의하여도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살인 사건과 같은 형사사건에서 살인의 목격자와 같은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살인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도구, 범행일지, 범행계획, 피고인의 범행 전후의 태도와 같이 밝혀진 여러 가지 간접증거들을 상호 연결했을 때 무죄의 합리적인 의문이 없을 정도로 사실의 입증이 있다면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 판례에 따른다면 위 사건의 경우 19세에 불과하고 결혼 직후인 A씨 아내가 신혼여행지에서 자살을 택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하고 오히려 A씨가 아내를 살해했을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많다는 점에서 A씨에게 유죄가 선고될 여지가 많아 보인다.

위 사안처럼 직접증거가 없는 살인사건의 경우 간접증거에 따라 유·무죄가 엇갈리기도 한다.

먼저 같은 교회에 다니는 내연녀를 살해하고 시신을 야산에 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 남성의 경우 살인과 사체은닉 혐의로 기소되어 지난 달 29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20년이 확정됐다. 백골 상태로 발견된 시신을 두고 '살인'과 '자살' 주장이 맞섰지만, 법원은 이 남성이 휴대전화로 살해 정황을 의심케 하는 검색을 한 점 등을 들어 살인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손씨는 2015년 9월 내연 관계인 B(44·여)씨와 함께 경기 가평·양평 일대를 여행하다 말다툼 끝에 살해하고 시신을 포천의 한 야산으로 옮겨 숨긴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손씨가 동거하던 다른 여성에게 B씨와의 내연 관계가 들통나고 교회 지인들에게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따르면 손씨는 사건 한 달 전 B씨에게 돈을 빌리고 공정증서를 작성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손씨는 사건 이후 스마트폰으로 '사체 부패 시간', '증거 없는 재판' 등을 검색했고,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인 혐의를 받게 된 남성을 소재로 다룬 한 영화를 알아본 사실이 드러 났다. 반면 손씨 측은 시신을 숨긴 사실은 인정했지만, 살인 혐의는 부인했다. 술을 마신 손씨가 잠시 차에서 잠들었다가 일어나보니 조수석에 연료 2개가 피워져 있었고 B씨가 숨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1심과 2심은 손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였고 대법원도 하급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반면 소위 ‘낙지살인 사건’으로 유명한 한 사건에서는 대법원이 무죄로 판단하였다.

지난 2010년 4월 19일 인천의 한 모텔에서 윤 모씨가 산낙지를 먹다 사망했다. 처음에는 사고사로 알았던 부모는 딸의 시신을 화장해 인천 앞바다에 뿌렸다. 그런데 49재를 앞두고 남자친구인 김 모씨가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한 사실을 알게 된 유족이 재수사를 요청하였고 그 후 김모씨는 살인 혐의로 체포 후 구속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검찰측은 윤씨가 치아질환이 있어 평소에 낙지를 싫어 했던 점, 낙지를 먹다가 호흡 곤란을 느꼈다면 고통으로 괴로워 하며 강하게 몸부림을 쳤을 것인데 술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은 점, 피해자가 누워 있던 곳이 술자리와 상당히 떨어진 출입구 쪽인 점, 김씨가 별다른 소득이 없는 피해자 앞으로 거액의 생명보험을 가입시키고 본인이 그 돈을 수령한 점 등을 들어 김모씨가 피해자의 코와 입을 막아 피해자로 하여금 숨을 못 쉬게 한 후 질식케 해 뇌사상태에 빠트리게 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주장하였고 1심은 이를 받아 들여 김모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하였다.

그러나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질식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얼굴 표정이 펴지기 때문에 편하게 누워있는 것처럼 보이며, 술자리 바깥쪽에 앉아 있었다면 질식해 몸부림을 쳤더라도 술자리가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고, 당시 피의자 김씨가 극도로 당황해 낙지를 꺼낸 정황에 대한 진술이 바뀔 수 있다"고 봤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낙지 머리가 4.3~4.8cm로 입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고, 피해자 윤씨가 동생에게 낙지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한 적이 있는데다, 현장에 윤씨의 젓가락이 놓여 있어 윤씨도 낙지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 후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항소심의 판단을 유지하였다.

언뜻 보기에는 두 사건의 결론이 다른 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우리 형사법이 증거재판주의, 자유심증주의를 채택한 결과이다. 즉, 형사절차에서 유죄의 인정은 법에 따라 인정되는 증거에 따라 법관이 합리적인 의심없는 확신이 있는 경우에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러한 의심이 있으면 ‘피고인의 이익’에 따라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다. ‘낙지사건’에서는 여러 가지 의구심에 불구하고 검사가 유죄의 확신을 주지 못 하였다는 것이다.
 

[사진=법무법인 명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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