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연의 머니LAW] 돈 떼먹은 지인의 가게에서 물건 가져오면 처벌받나?

민법ㆍ형법서 보장한 '자력구제ㆍ자구행위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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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DB]


직장인 김모(40)씨는 자전거 동호회에서 알게 된 핸드폰 대리점 사장 장모(41)씨에게 돈 300만원을 빌려줬다. 한 달만 쓰고 돈을 갚기로 한 장씨는 갚기로 한 날짜가 되자 이리저리 핑계를 대며 김씨의 연락을 피하고 있다. 몇 달째 연락두절에 화가 난 김씨. 장씨가 운영하는 핸드폰 대리점을 찾아가 매장에서 판매하고 있는 최신 휴대폰 300만원어치를 가지고 나왔다. 김씨의 행동은 적법할까.

법보다 주먹이 앞 설 때가 있다. 채무자가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 못할 경우,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법적인 절차를 통해 돈을 돌려 받는 방법이다. 그러나 채권자 사정이 여의치 않고, 채무자가 갚을 의사를 보이지 않는 경우에는 채무자의 물건이라도 받아 손해를 보전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게다가 소액이 아닐 경우에는 정당한 법적 절차를 밟는 도중 채무자가 재산을 빼돌려 오히려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법에는 ‘자력구제의 원칙’이 있다. 민법 제209조는 ‘점유자가 그 점유를 부정히 침탈 또는 방해하는 행위에 대해 자력으로써 이를 방위할 수 있다’고 보장한다. 형법 제23조 역시 ‘법정 절차에 의해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가능한 경우에 그 청구권의 실행 불능 또는 현저한 실행곤란을 피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즉, 긴급한 상황에서는 법정 절차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는 행위를 벌하지 않거나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김씨의 행동은 적법할까. 결과적으로는 아니다. 법원은 자력구제 혹은 자구행위 성립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다. 한 형사소송 전문 변호사는 "자력구제 원칙은 국가가 아닌 개인이 개인에게 강제력을 행사하는 원리기 때문에 남용되면 무법상태가 초래될 수 있다"며 "때문에 법적인 절차를 통해 청구권을 보전하기 불가능한 경우, 시기를 놓치면 청구권을 보전하지 못하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청구권자가 권리 남용을 하지는 않았는지, 사회적 윤리성에 반하지 않는 최소한의 정도를 지켰는지, 행위가 발동될 시간은 적절했는지, 그 과정에서 폭행·폭언 등이 있지는 않았는지 등 여러 제약사항이 존재한다. 앞서 김씨의 경우 자력구제 대신 민사 소송 절차를 거쳐 빌려준 돈을 회수할 방법이 있기 때문에 자력구제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실제 대법원은 석고상 납품업자 박모씨가 허모씨에게 석고상을 여러 차례 납품한 뒤 대금을 못받고 있던 중 허씨가 화랑을 폐쇄하고 도주하자 야간에 폐쇄된 화랑의 문을 뜯어내고 허씨의 물건을 몰래 가지고 나온 사건에 대해 '자구행위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피고인이 야간에 폐쇄된 화랑의 문을 미리 준비한 드라이버로 뜯어내고 물건을 몰래 가지고 왔다는 범행의 수단·방법에 미루어볼 때 절도의 범의를 부정할 수 없고, 자구행위의 법리를 오해한 측면이 있다”고 판단했다. 박씨는 결국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 절도 등의 혐의로 처벌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