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당신이 잠든 사이 계좌가 압류돼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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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정  변호사(법무법인 이안)
입력 : 2018-04-02 11:42
수정 : 2022-06-0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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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A씨는 최근 은행업무를 보러 거래은행에 들렀다 자신의 계좌가 압류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8년 전 사소한 시비로 몸싸움을 했던 상대방이 A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8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확정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A씨는 아무리 떠올려보아도 그러한 재판을 받은 기억이 없어 황당하다.

# 가정주부 B씨는 12년 전 동생의 사업자금 차용에 대한 담보조로 C씨 앞으로 자신의 상가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주었다. 그 후 B씨는 이혼과 위암으로 자신의 주소지를 떠나 수년간 다른 곳에 거주하면서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C씨가 B씨의 임야에 대해 경매신청을 하자 놀란 B씨는 동생에게 무슨 일인지 확인하였으나, 동생은 그냥 예전에 빌린 사업자금 때문이라고만 하면서 자신이 변제하고 경매신청을 취하시킬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나 동생의 말과 달리 B씨의 임야는 경매로 넘어갔고, 그 원인을 알아보니 C씨가 B씨를 상대로 어음금지급청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판결이 확정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B씨는 어음을 발행한 기억이 없고 그런 소송이 있었는지 조차 몰라 억울하다.

사례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피고인 판결이 확정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의뢰인들은 하나같이 “이런 법이 어디 있나요?”라고 하소연한다.

재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당사자가 출석해야 한다. 그런데 만약 피고가 법원에서 날아온 송달을 회피하기 위해 일부러 주소지를 거짓으로 기재하거나 다른 사람처럼 행세하여 재판 진행을 방해하는 경우 등에 대비하여 당사자 일방의 출석 없이도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바로 ‘공시송달’제도이다. 공시송달은 당사자의 주민등록지 등 주소지에 송달을 하였으나 폐문부재, 수취인불명, 이사불명 등으로 당사자가 소장, 변론기일통지서 등을 교부받지 못하는 경우 이루어지며 법원게시판에 게시함으로써 당사자가 교부받은 효력을 발생시킨다.

소개된 사례의 A씨와 B씨는 모두 소장 송달이 공시송달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다. 매일 법원 게시판을 뒤지는 것을 취미로 하지 않는 한 소송이 제기된 것을 모를 수밖에 없고 억울한 것이 당연하다. 다행이 우리 법은 이런 황당한 경우를 구제하는 수단을 두고 있는데 바로 ‘추완항소’라는 제도이다. 본래 원심판결은 판결 송달 후 2주가 지나면 확정되고 더 이상 다툴 수 없으나 예외적으로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원심판결에 항소하지 못하였을 경우 그 사유가 없어진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원심판결을 다툴 수 있게 하고 있다(민사소송법 제173조).

사례의 경우 A씨와 B씨는 판결문조차 공시송달 되어 항소기간을 놓칠 수 밖에 없었지만 고의로 송달을 회피한 경우가 아니므로 항소기간을 준수하지 못한데 책임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A씨와 B씨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추완항소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이 공시송달로 진행되었다고 언제나 추완항소가 가능한 것은 아닌 바, 지금부터는 추완항소가 인정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를 판례를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추가로 추완항소시 주의할 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2. 추완항소가 허용되는 경우
가. 소장부본부터 공시송달이 시작된 경우(2008므87 판결)
소장부본과 판결정본 등이 공시송달의 방법에 의하여 송달되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과실 없이 그 판결의 송달을 알지 못한 것이고, 이러한 경우 피고는 그 책임을 질 수 없는 사유로 인하여 항소기간을 준수할 수 없었던 때에 해당하여 그 사유가 없어진 후 2주일(그 사유가 없어질 당시 외국에 있었던 경우에는 30일) 내에 추완항소를 할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사례에 해당된다.

나. 법원의 선고기일 통지 누락으로 공시송달에 이른 경우(2000다19069 판결)
제1심 소송절차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변론기일에 출석하여 소송을 수행하다 법원이 직권으로 선고기일을 연기하면서 당사자에게 통지하는 절차를 누락하여 피고가 출석하지 못하고 판결정본이 송달불능되자 이를 공시송달한 사안에서 법원은 추완항소를 인정하였다. 정상적으로 소송을 수행하여 오던 당사자가 원래 예정된 선고기일 직후의 재판진행상황을 그 즉시 알아보지 아니함으로써 불변기간을 준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그 책임을 당사자에게 돌릴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원고가 항소장에 본인 주소를 지번만 기재한 경우(90다카21206 판결)
일반적으로 원고가 항소장에 거주하는 아파트의 동, 호수 표시를 하지 않아 송달이 불능에 이른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주소지를 잘못 기재한 원고에게 송달불능의 책임이 인정된다. 그러나 기재된 주소지에 소규모 아파트 건물만 존재하고 관리인이 상주하는 경우라면, 관리인에게 성명을 문의함으로써 송달이 가능한 상황이었음에도 우편집배원이 이러한 시도 없이 동, 호수 기재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주소불명으로 반송해버린 사례에서는 당사자의 책임 있는 사유보다 우편집배원의 불성실한 업무처리가 원인이라고 보아 추완상고를 인정하였다.

3. 추완항소가 불허되는 경우
가. 소송진행 중 소송서류가 송달불능되어 공시송달된 경우(97다50152 판결)
원고는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 소를 제기하였고 소송진행 중 당사자 본인신문에도 출석하는 등 소송개시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소송대리인이 사임하게 되고 송달지가 원고 주소지로 변경되면서 송달불능으로 공시송달이 이루어진 사례에서, 법원은 추완항소를 부적법하다고 보았다. 이는 소송 진행 도중 소송서류의 송달이 불능하게 된 결과 공시송달의 방법에 의하게 된 경우에는 당사자에게 소송의 진행 상황을 조사할 의무가 있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법원에 소송의 진행 상황을 알아보지 않았다면 공시송달에 이른데 당사자의 과실이 있다는 취지이다.

나. 소송대리인측 사정으로 판결정본을 송달받은 날을 잘 못 안 경우(99다9622 판결)
한편 항소나 상고제기 기간을 놓친데 책임이 있는지 여부는 당사자 본인에 한하지 않고 소송대리인이나 대리인의 보조인도 포함한다. 따라서 변호사 사무실 직원이 판결정본을 문서수발대장에 송달받은 날짜를 잘못 기재하여 상고일을 도과한 것은 당사자가 책임질 수 없는 사유로 보지 않는다.

4. 추완항소시 주의할 점
이러한 추완항소는 일종의 비상 구제수단이라 요건이 까다로운데 그 중 하나가 바로 기간이다. 추완항소를 비롯한 추후보완 행위는 ‘책임질 수 없는 사유(=판결이 공시송달로 이루어진 것을 알지 못한 상황)가 없어진 후 2주일 내에(당시 외국에 거주한 경우에는 30일)’ 이루어져야 한다. 2주를 준수하지 못하면 부적법하다고 보아 바로 각하되므로 주의를 요한다.

예를 들어 해외거주 중이던 피고는 호적등본을 발급받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파양된 사실을 인지하고 동생에게 위임장을 보내 재판기록을 열람토록하고 우편으로 재판기록을 송부받았다고 하자. 추완사유가 종료된 시점이 동생이 재판기록을 열람한때 일까, 아니면 피고가 재판기록을 받은 때일까? 법원은 비록 동생이 열람한 사실은 인정되나 피고의 소송대리인으로서 열람한 것이 아니므로 피고가 우편으로 기록을 받아본 때부터 30일내에 항소한 것은 적법하다고 하였다(2000므87 판결).

한편 ‘책임질 수 없는 사유가 없어진 때’는 단순히 자신에 대한 판결이 있었던 사실을 안 때가 아니고 그 판결이 공시송달 방법으로 송달된 사실까지 안 때를 가리킨다. 통상 본인이나 소송대리인이 법원 민원실에 방문해 사건기록을 열람하거나 판결정본을 발급받았다면 그 판결이 공시송달로 송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본다.

5. 공시송달에 의한 판결이 두 번 이루어진 경우
동일한 사안에 대해 한번이 아닌 두 번씩이나 공시송달에 의한 재판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9년 전 공시송달로 패소판결이 확정되었다가 시효기간이 만료될 즈음(채권의 소멸시효는 1년부터 10년까지 다양하나, 일단 판결이 확정되고 나면 확정된 때부터 10년으로 연장된다) 원고가 다시 소를 제기하여 후소 또한 공시송달로 진행되었다고 하자. 즉, 같은 채권에 대해 두 개의 공시송달 판결이 생기는 경우이다. 이 경우 어느 판결에 대해 추완항소를 하여야 할까? 만약 두 번째 판결에 대해서만 추완항소를 한다면 아무리 추완항소가 적법하다 해도 첫 번째 판결의 기판력 때문에 추완항소는 기각되고 만다. 따라서 두 판결 모두에 대해 추완항소를 하여 다투어야만 하는 것이다.

6. 나가며
추완항소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패소판결을 받은 당사자가 곤경에서 탈출할 절호의 기회인 것은 의문이 없다. 그러나 추완항소는 단순히 재판에 출석할 기회를 다시 부여한다는 의미일 뿐 원심판결을 뒤집거나 없었던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과거의 소송은 다시 원점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실상 오랜 시일이 흐른 후 과거의 사건을 다툰다는 것은 당사자들의 기억이 정확치 않고 증거도 멸실된 경우가 많아 녹록지 않을 뿐 아니라, 잊고 싶었던 기억을 다시 떠올려야 하는 심적 스트레스가 수반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사만루의 투수로 등판하는 것이니 사전에 나의 방어 주장과 증거를 명확히 파악한 후 도전해야 할 것이다.
 

[사진=법무법인 이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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