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앤피이슈-채용비리①]공모하면 무죄?...쉽지 않은 채용비리 처벌

  • 내정자가 있거나 특정인물, 집단위해 채용기준 바꾼경우…'업무방해죄' 해당
  • 법원 주류적 견해 '채용=기업의 업무'…"부정채용 공모 조직적으로 한 경우, 업무방해 아냐"
  • 피의자들 끝까지 웃을 수 있을까?…최근 대법원 '업무 공정성 훼손된 경우도 업무방해'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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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8-03-29 09:00
수정 : 2018-04-0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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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DB[아주경제 DB]


#강원랜드는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2차례에 걸쳐 518명의 직원을 채용했다. 그런데 이 가운데 무려 493명(95%)이 내·외부의 인사청탁으로 선발된 것으로 감사원 조사결과 드러났다. 인사청탁에는 당시 최흥집 강원랜드 사장, 전·현직 국회의원, 도·시·군회의 의원, 공무원, 스님 등이 대거 포함됐다. 강원랜드 인사팀은 적발되기 전까지 625명의 청탁대상자들을 별도로 관리했는데, 이 엑셀파일에는 지원자들의 이름, 생년월일, 학력, 전화번호, 각 전형 점수 등이 별도로 기재됐다. 

# 금융감독원은 KB국민은행·KEB하나은행·JB광주은행·BNK부산은행·DGB대구은행 등 채용비리가 의심되는 5곳의 금융기관을 검찰에 고발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2017년 공개한 금융권 신입직 채용비리 사례에 따르면 이들은 전·현직 은행장이나 금융지주회장, 수백억원대 VIP회원,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고위직의 자녀나 친인척 등을 특혜 채용했다. 금융권이 '꿈의 직장'으로 불리면서 현직 국회위원과 고위공무원 등도 채용청탁자에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내정자를 찍어놓고 채용 절차를 진행하거나 특정인물, 집단에 특혜를 주는 '인사비리'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검찰 수사를 통해 잇따라 드러나고 있다. 채용과정에서 청탁을 받고 특정 인물을 채용하도록 부정행위를 주도하거나 가담한 경우, 법은 이들에게 어떤 죄를 물을 수 있을까.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은 채용비리에 대해 법인의 업무를 방해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한 변호사는 “채용과정에서 내정자 등을 부정하게 합격시킨 경우에는 지시자와 가담자 모두 형법상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며 “(부정을 지시한)일부 고위직에 의해 행위에 가담하지 않은 직원들의 권한 내 업무가 방해됐다는 논리”라고 설명했다.

형법 314조는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 형법 313조는 그러한 방법으로 사람의 신용을 훼손한 자를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또 채용과정에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았다면 업무상횡령, 뇌물공여 등의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채용비리가 현실에서 나타나는 방식은 좀 더 다양하다. △인사 담당자가 고위직의 청탁을 받고 특정 인물을 합격시키 위해 채용기준을 완화하거나 채용인원을 확대해 커트라인을 낮추는 경우 △인사팀이 직접 시험 성적을 조작하는 경우 △면접 등 정서적인 부분에 과한 배점을 주는 경우 등이다.

구체적인 청탁이나 지시가 없더라도 위계관계에서 오는 압박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정한 채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신입 직원의 경우 채용과정과 합격기준이 명확해 그나마 부정행위를 적발하기 쉬운 편이다. 검찰 관계자는 "신입직 공채와 달리 경력직의 경우에는 내부고발이 이뤄지지 않는 한 기소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검찰이 기소하더라도 법원에서 채용비리가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법이 '채용=업무'로 보기 때문에 혐의자들의 업무방해 정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 어떤 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게 법원 논리다.

또 인사담당자 전원이 조직적으로 채용비리에 가담하거나, 위계관계에 의해 사장의 (부정한)지시를 알아서 이행한 경우에도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주류적 판례다. 실제 대법원은 채용담당자 전원이 합의하에 채용비리에 가담한 경우에는 업무방해죄를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1999년 서울시농수산물공사(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이하 공사)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당시 이 공사 사장은 국회의원으로부터 자신의 후원회 회장의 자녀 A를 합격시켜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인사총무팀장에게 지시했다. 총무팀장은 신입직 필기시험에서 A가 합격권 밖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신분상의 불이익을 염려해 또 다른 채용담당자 3명과 함께 A의 시험답안지를 조직적으로 위조했다. 결국 A는 필기시험 10위의 성적으로 합격했고, 사장의 면접을 거쳐 최종합격까지 했다.

이듬해에는 대학교 스승의 딸 B를 채용하기 위해 계약직 직원의 채용기준을 바꾸기도 했다. 당시 신규 계약직 채용연령은 1970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만 30세 이하)다. B는 1969년 6월생으로 연령기준이 초과돼 지원할 수 없었다. 인사담당자는 사장의 명령을 받고, B씨가 응시원서를 접수하고 면접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자격연령을 변경했다. 이후 공사의 채용 응시연령은 1969년 1월 1일 이후 출생자로 변경됐다.

부당채용을 지시한 공사 사장은 신규직원 채용업무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서울중앙지법은 채용비리에 가담한 인사담당자가 성적 조작의 대가로 피고인으로부터 특별한 보상을 받지 않았고, 그중 한명은 오히려 한 달 반 만에 구조조정으로 불리한 인사를 당했으며, 공사 내규상 계약직 채용은 사장의 전권 사항인 점을 들어 사장에 무죄를 선고했다.

'원포인트' 채용을 위해 채용기준을 바꾼 혐의도 무죄로 봤다. 법원은 직원공고(응시자격을 1970년 1월 1일 이후로 표시한 채용공고)가 신문을 통해 나갔는데, 신문을 통한 공고는 직원 채용에 있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어떤 절차로서 효력을 가지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채용기준을 변경하는 절차가 적법하게 이뤄졌고, 결과적으로 B는 채용 기준에 따른 정당한 응시자격을 갖춘 자가 됐다는 점 등이 주요 근거가됐다.

상고심에서는 이 사례가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지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상고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항소부는 직원 채용의 업무 주체는 사장이기 때문에 애초에 업무방해죄 성립이 안된다고 봤다. 신규직원을 채용하는 업무는 원칙적으로 사장에게 귀속된다는 설명이다.

최중현 재판장은 판결문을 통해 “공사의 인사규정, 인사채용절차 등은 신규직원 채용 권한이 사장에게 귀속된다는 전제하에 구체적인 집행절차를 규정한 것일 뿐”이라며 “절차 때문에 업무의 귀속주체가 공사로 변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공사의 업무를 방해했다는 검사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고, 이를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도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역시 이런 취지의 무죄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현재 검찰은 강원랜드, 인천관광공사 등 다수의 공기업을 비롯해 우리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등 채용비리가 적발된 금융기관 5곳의 전·현직 간부, 인사담당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중이다. 검찰은 이들이 짧게는 3~5년, 길게는 수십년간 공공연하게 채용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있다. 한 사내 변호사는 "인사담당자들이 수년간 조직적, 관행적으로 부정채용을 저질른 경우에는 업무방해죄 성립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 판례는 달리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010년 수협 신규채용(2008년)당시 필기시험 채점 담당자들이 조합장 지시에 따라 시험점수를 조작해 특정인물 2명을 합격시킨 것에 대해 2심에서 내린 업무방해죄 무죄선고를 파기했다. 이 사건은 김능환(재판장)전 대법관과 청탁금지법을 만든 김영란(주심) 대법관 등이 처리했다.

김 대법관은 당시 판결문에서 "업무방해죄는 업무방해의 결과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업무 방해의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발생한 경우, 또 업무수행 자체가 아니라 업무의 적정성 내지 공정성이 방해된 경우에도 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앞으로 진행될 채용비리 재판에 수십만 취업준비생들의 눈과 귀가 쏠릴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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