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우리 가게 레시피도 영업비밀일까

서울중앙지방법원 2011. 10. 27. 선고 2008가합100089, 2011가합63425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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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 코카콜라 제조비법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란타에 있는 월드 오브 코카콜라 (World of Coca-Cola), 이 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영업비밀 중 하나인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이 보관되어 있다.

‘Vault of Secret Formula’ 또는 줄여서 ‘The Vault’라고 불리는 전시장을 들어서면 130년 가까이 지켜져 온 신비의 코카콜라 제조법을 찾아가는 여정을 투어로 즐길 수 있다. 방문객들은 멀티미디어 영상과 상호작용하며 코카콜라 제조법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체험하고 배우게 된다.

투어의 마지막엔 최첨단 보안장치로 철통같이 경비되고 있는 금고를 만날 수 있는데 바로 이 안에 코카콜라의 제조비법이 들어 있다고 한다. 물론 관람객들은 이 금고를 열어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코카콜라 제조비법을 지키기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들은 방문객들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실제로 코카콜라가 제조비법을 지키기 위해 들이는 비용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코카콜라의 핵심재료인 원액은 미국에서도 특정 공장에서만 생산된다. 이 원액을 공급 받아 콜라를 병에 담는 생산자도 정해져 있다.

위기도 있었다. 2014년에는 대만에서 음료와 식료품 첨가물을 구체적으로 상품에 표시하도록 식품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는 바람에 제조비법이 공개될 뻔 한 적도 있었다. 당시 코카콜라는 대만 시장에서 철수하는 것까지 고려했었다고 한다. 다만, 여러 외국 기업들이 고유 제조 비법이 노출될 수 있다며 반발하자 독자적으로 시장에 유통되는 제품에 대해서만 상표표시를 의무화 하는 것으로 적용범위가 축소되었고 그 덕분에 코카콜라의 제조비법도 비밀로 지켜질 수 있었다고 한다.

2. 관련규정 - 영업비밀로 보호 받기 위한 요건

이처럼 코카콜라와 같이 지식재산을 특허가 아닌 영업비밀로 보호하는 전략을 택하는 경우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든다. 유출의 위험도 감수하여야 한다. 반면 특허의 경우 유출의 위험은 없지만 등록 과정에서 핵심기술을 공개하여야 할 뿐만 아니라 특허로 보호되는 기간도 제한되는 단점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외부에 그 비밀이 노출되면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게 되는 중요한 노하우나 정보의 경우 특허보다는 영업비밀로 보호하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을 통해 영업비밀을 법률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동법 제3장). 다만,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보호 받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① 해당 정보가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았어야 하고 (비공지성), ② 정보가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져야 하며(경제적 유용성), ③ 이러한 정보가 비밀로 관리되어야(비밀관리성) 법률로 보호 받는 영업비밀에 해당하게 되는 것이다.

코카콜라가 비밀유지를 위해 들이는 노력과 비용을 생각해 볼 때 그 제조비법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한다는데 의문이 없다. 그렇다면, 며느리도 모른다는 식당의 비법 레시피는 어떨까? 당연히 영업비밀로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설령 그 비법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져 있지 않고, 장사의 밑천이 되는 값진 노하우라고 하더라도 가게 사장님께서 이를 비밀로 엄격하게 관리하지 않았다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로 보호받기 어렵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정도로 관리를 해야 영업비밀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이에 관한 의미 있는 판례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3. 사실관계

이 판결의 주요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다.

A회사는 2002년 2월 L추어탕이라는 상호로 설립되어 전국 100여개의 가맹점을 두고 있는 추어탕 가맹사업자이다. 2007년경 A회사의 주요 임원들이 회사를 퇴직하고 그 동안 A회사에 추어탕 식자재를 납품하던 자와 함께 추어탕 가맹사업을 하는 B회사를 만들었다. B회사는 A회사에서 제조, 생산하였던 추어탕과 동일한 재료와 동일한 방법으로 추어탕을 제조, 생산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A회사 재직 당시 취득한 추어탕 제조 비법까지 그대로 접목시켜 사용하였다.

4.  쟁점

이 사건의 핵심쟁점은 A회사의 추어탕 제조비법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A회사가 해당 제조법을 영업비밀로 관리해 왔는지가 다투어 졌다.

5. 법원의 판단

가. 비밀관리성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

그 동안 대법원은 ① 그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시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②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방법을 제한하거나 ③ 그 정보에 접근한 자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ž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④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말한다고 판시하여 왔다(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7도6772 판결 등 참조). 이 판결도 위와 같은 대법원 판결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나. 사안의 경우

결론적으로 법원은 이 사건 추어탕 제조법이 A회사의 영업비밀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들었다.

- A회사의 추어탕 제조법은 사실 남원의 유명한 L 추어탕 가게에서 전수 받은 것인데, 이 때 L 추어탕 가게와 사이에 ‘제3자에게 추어탕 비법을 전수하지 않는다’는 약정을 체결하였음.
- 추어탕의 제조성분은 포장지에 표시되어 있으나 그 제조성분과 인터넷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추어탕 제조방법만으로는 특유의 맛을 낼 수 없음.
- A회사는 공장에서 추어탕을 제조하여 각 가맹점에 공급하는데 각 가맹점에서는 그 제조법을 알 수 없었음.
- 추어탕 소스는 공장 내 출입통제구역에서 생산직 직원 일부만이 관여하여 행해짐.
- 공장 내 연소스 배합실, 분말소스 배합실이 출입통제구역으로 관리되어 왔음.
- A회사가 생산직 직원들로 하여금 비밀유지 서약서를 작성하게 하였음.

따라서 퇴사 후 유사한 회사를 설립한 후 업무상 취득한 추어탕 제조법을 허락없이사용하여 추어탕을 생산, 제조한 행위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다.

6. 판결의 시사점

위 판결은 음식의 조리비법 역시 ① 비공지성, ② 경제적 유용성, ③ 비밀관리성의 요건을 갖추면 영업비밀로 보호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사안의 A회사는 공장을 갖추고 대량으로 추어탕을 제조, 유통하는 가맹사업자로서 추어탕 제조법을 비밀로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과 노력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재력과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업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형 프랜차이즈 식당이 아니라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규모 음식점의 경우에는 어떨까? 설령 훌륭한 조리법을 개발했다 하더라도, 판례가 제시하는 기준에 맞추어 이를 영업비밀로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크지 않은 매장에 출입통제구역을 따로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며 수시로 바뀌는 아르바이트생들로부터 보안서약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렵사리 서약서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이를 관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려하여 2015년 부정경쟁방지법이 개정되었다. 영업비밀로 인정되기 위한 비밀관리 수준이 ‘상당한 노력’에서 ‘합리적인 노력’ 으로 완화된 것이다. 다만, 상당한 노력과 합리적인 노력이 법률적으로 다르게 평가될 수 있는지, 만일 다르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별되는지에 관하여 법률규정만으로는 명확하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그 구체적 기준을 제시한 2심 판결 (의정부지방법원 2016. 9. 27. 선고 2016노1670)이 있어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이 사건은 여행전문업체인 피해자 회사의 업무용 컴퓨터에 저장해 둔 고객정보파일을 피고인이 USB에 옮겨 보관하다가 퇴사한 이후에 파기하지 않고 계속 이용한 사안이다.

1심 법원(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6. 6. 17. 선고 2015고정1353 판결)은 ‘상당한 노력’과 ‘합리적인 노력’을 실질적으로 동일한 의미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피해자 회사가 그 동안 해당 정보에 대한 직원들의 접근권한을 제한하거나 비밀표시를 한 사실이 없고, 직원들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한 사실도 없음을 들어 해당 고객정보파일이 영업비밀이 아니라고 하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반면 2심 법원은 ‘합리적 노력’은 ‘상당한 노력’보다 완화된 기준이라고 보고 피해자 회사가 네이버 주소록에 법인계정을 만들거나, 구글 스프레드 시트에 직원들만 초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고객정보파일을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없도록 별도로 관리한 것만으로도 비밀관리성이 인정된다고 하면서 원심을 파기하고 피고인에 대하여 벌금 400만원을 선고하였다.

7. 나아가며

이제는 한국 음식을 친숙하고 맛있게 즐기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바야흐로 음식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음식도 음악이나 영화 못지 않은 창작물로 보고 걸맞은 보호를 해 주어야 할 시점이라 생각된다.

요리사들의 창작의 자유를 보다 넓게 인정해 주고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준다면 우리나라도 언젠가 코카콜라처럼 전설적인 제조비법을 가진 나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부정경쟁방지법 개정 취지에 맞추어 앞으로 보다 전향적인 판결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 본다.
 

[사진=장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