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용제 조덕제 사례로 본 미투 소송 가해자vs피해자 공방. 쟁점은?

이제 새롭지도 않은 '그자'의 전형적 패턴 '사과-부인-소송'

배용제(시인), 조덕제(배우), 안희정(충남지사)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당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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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배용제 시인, 조덕제 배우, 안희정 전 충남지사(왼쪽부터).
 

성추행·성폭행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의 전형적인 패턴은 '사과-(범행)부인-법적공방'이다.

우선 자신의 성범죄 사실이 주변에 알려지면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한다. 사과를 한 후 분노의 여론이 일정 부분 사그라들면 “억울하다”,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다”라고 호소한다. 사태가 잊혀질 때 쯤 되면 피해자들을 상대로 법적 공방을 시작한다.

13일 여성계 및 법조계는 성범죄 가해자들로 지목된 이들이 보이는 행동 패턴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사태에서도 똑같이 재현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성폭행은 했지만 강제는 아니었다. 피해자분들께 사과드린다”(이윤택 전 예술감독), “강제로 키스한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관계는 없었다”(김기덕 감독), “큰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께 사죄드린다. 모든걸 내려놓겠다”(배우 조재현).

가해자들의 이같은 행태는 법적공방이 시작되면 더 구체화된다. 비슷한 혐의로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배용제 시인과 배우 조덕제씨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성추행, 성폭행을 ‘격려의 표현’이나 ‘예술에 대한 열정’ 등으로 포장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어기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때문에 이들의 사과를 그대로 믿고 있다가 피해자들이 2차 피해, 역고소 등을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배씨는 2012~2014년경 한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시 창작 과목의 전공실기 교사로 근무하면서 자신이 가르치던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성적 수치심을 주는 발언을 일삼고, 강제추행 및 간음을 한 혐의를 받아 기소됐다. 검찰 조사 결과 배씨는 자신의 추천서를 받아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는 점 등 입시영향력을 이용해 자신의 창작실에서 5명의 학생을 강제추행하고 이중 2명을 성폭행했다.

배씨는 피해 학생들이 SNS를 통해 성폭행 사실을 폭로한 직후 “시를 가르친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성적 언어로 희롱을 저지르고 수많은 신체접촉으로 추행을 저질렀다”며 “상처받고 아픈 시간을 보냈을 아이들에게 머리숙여 용서를 구한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법적공방이 시작되자 배씨는 “사과문은 도의적으로 올린 것이고, 학생들과는 합의하에 맺어진 관계였다. 학생들이 나를 좋아했고, (나의 힘을 이용하고자) 유혹했다. 우리는 사귀는 사이였다” 등의 주장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아동복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9부(김수정 부장판사)로부터 징역 8년과 20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를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해 제기한 항소심(서울고법 형사 9부, 김우수 부장판사)에서도 징역 8년형을 선고받았다.

조덕제씨 사건의 경우 성추행 폭로로 인한 피해자의 2차 피해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는지 보여준다. 조씨는 2015년경 장훈 감독의 영화 ‘사랑은 없다’를 촬영하던 중 상대 여배우 A씨와 합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A씨의 속옷을 찢고, 바지에 손을 넣어 신체부위를 만지는 등의 행동을 한 끝에 강제추행치상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는 사건이 불거지자 A씨와 언론에 곧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영화에서 하차하겠다는 입장도 발표했다. 그러나 사과와 별개로 조씨는 A씨에 대한 인적사항과 과거행적, 악의적인 소문 등을 인터넷에 지속적으로 유포했다. 결국 A씨와 A씨의 변호인 측은 해당 사건의 쟁점이 ‘성추행 여부’가 아닌 ‘꽃뱀에 당한 남배우’ 사건으로 변질됐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조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열린 2심에서 그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과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받았다. 조씨는 현재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한 상태다. A씨 역시 조씨를 명예훼손, 성폭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법률, 특정범죄신고자보호법, 협박 등으로 추가 고소했다.

전문가들은 성범죄 사건의 경우 객관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가해자의 사과 유무,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 주변인 진술 등이 유무죄 판결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증거가 없다보니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도 벌어진다. 이런 점을 의식해 안희정 전 충남지사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김지은씨 역시 “내가 곧 증거”라며 “본인 포함, 가족들에게 허위사실 유포로 인한 2차 피해가 가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조현욱 한국여성변호사협회 회장은 "가해자들이 사과를 했다고 해서 법적인 처벌을 달게 받겠다는 의미로 해석해선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도, 살인 등 다른 범죄와 달리 성추행, 위력에 의한 성폭행 등은 목격자가 없고, 은밀한 공간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현장 자체가 없는 사건을 수사하는 것과 같다"며 "피해자가 확실한 영상이나 음성, 일기 같은 기록물들로 피해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구조상 가해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성범죄 특성상 가해자가 반드시 공개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무고,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의 소송전에도 대비해야 한다. 실제로 현재 수많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역고소로 2차, 3차 고통을 받고 있다. 이선경 변호사는 “미투에서는 가해자의 신상공개가 필수적으로 선행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법적분쟁의 위험을 각오하고 피해 사실을 폭로해야 하는 제도상의 허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