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형사처분인 듯 형사처분 아닌 국세청의 통고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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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난 여름, 퇴근길에 한 의뢰인으로부터 다급한 요청을 받았다. 수일 내로 경찰조사를 앞두고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늦은 시간에 집 앞 커피숍에서 만나 상황을 들어보니 요지는 이러했다. 과거 의뢰인이 재직했던 회사가 법인세 포탈로 조사를 받았고, 대표직을 잠깐 맡은 적이 있는 의뢰인도 국세청으로부터 수억원에 이르는 통고처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후 벌금을 납부하지 못하자 결국 국세청의 고발로 형사입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실무상 자주 발생하는 것이 여비, 교통비를 허위로 계상하여 손금처리를 과다하게 하는 경우이다. 주로 공개하기 어려운 지출비용 마련에 사용된 금액을 처리하는 방법이다. 사업을 하다보면 부득불 용처를 소명하기 힘든 상황이 발생하기 마련이나, 이것이 과다해지거나 비자금 조성 등에 활용되는 탓에 엄히 처벌된다. 손금 과다처리의 경우 해당 법인은 가산금을 포함해 누락한 세액을 납부하여야 함은 물론, 포탈행위가 소위 ‘사기나 부정한 행위’로 판명되면 조세범처벌법에 의해 법인과 행위자(주로 대표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내지 포탈세액의 3배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여기서 끝이 아닌 것이 과다 계상된 손금은 대표의 소득으로 간주하여 추가 소득세도 납부해야 한다.

그런데 조세범의 경우 일반범죄와 달리 ‘통고처분’이라는 절차를 거친다. 조세포탈 혐의가 발생하면 바로 형사절차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세관청이 먼저 일정 금액의 벌금액수를 행정처분 형태로 통고한다. 이를 이행하는 경우에는 사건을 종결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수사기관에 고발함으로써 비로소 형사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조세범칙사건을 신속·간이하게 처리하기 위한 목적이다.

본래 통고처분은 형사절차의 사전절차이지만 형사처분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다 보니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형사절차와 매한가지로 다가온다. 이에 반해 세무관청은 그 권한 행사로서 행정처분으로 여기다보니, 통고처분 절차나 형식에 대해 납세자와 세무관청간에 온도차가 벌어지게 된다.
필자의 의뢰인이 건넨 통고처분서에는 ‘가공 여비교통비 계상을 통한 법인세 포탈(2015년)’이라고 기재되어 있을 뿐 구체적으로 언제, 어떠한 방법으로 가공비 계상을 하였는지 전혀 명시되지 않아 문제가 있어 보였다. 다행히 의뢰인은 통고처분 자체의 하자와 세무포탈에 관여한바 없다는 점을 다투어 무혐의 처분을 받게 되었지만, 벌금액수가 의뢰인이 납부 가능한 정도였다면 아마도 스토리는 달라졌으리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들어가 세무관청으로부터 통고처분을 받았다면 반드시 체크해야 할 두 가지 사항을 판례와 함께 살펴보자.

2. 형사고발 이후에 이루어진 통고처분(대법원 2014도10748 판결)

가. 사실관계
A씨는 거래처에 8억여원어치의 유류를 공급하고도 1억여원에 대해서만 세금계산서를 발급하였다는 이유로 관할 세무서장으로부터 고발을 당하여 형사절차가 진행 중, 관할 세무서로부터 동일 범칙행위에 대해 통고처분을 받자 이에 따라 금액을 납부하였고 원심은 A씨에 대해 면소를 선고하였다. 이에 검사는 형사고발 이후 통고처분은 무효이므로 A씨가 벌금액 상당을 납부했다 하더라도 A씨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나. 쟁점
세무관청이 조세범칙행위에 대해 고발을 하고서 나아가 통고처분까지 한 경우, 처분 받은 자가 그 선택으로 통고처분에 따라 벌금액을 납부하면 형사절차가 종료되는지, 아니면 고발 이후에는 세무관청의 통고처분 권한이 없어져 통고처분을 하더라도 무효가 되어 통고처분에 따르더라도 아무런 효력이 없는 것인지가 쟁점이다.

다. 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조세범칙사건에 대한 세무관청의 고발은 수사기관에 형사사건으로 처리할 것을 요구하는 의사표시로서, 고발과 동시에 형사사건 절차로 이행되어 세무관청은 동 사건에 대해 더 이상 통고처분할 권한이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고발이후에 이루어진 통고처분은 법적권한 소멸 후에 이루어진 것으로 효력이 없고 범칙행위자가 통고처분을 이행하였다 하더라도 형사처벌이 가능하다.

라. 사건의 의의
어찌 보면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고발된 이후라도 통고처분에 따라 금액을 납부하고 무서운 형사법정에 서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면 더 이로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세무관청에 통고처분 발령 여부에 더하여 처분 시점에 대한 재량까지 부여하게 됨으로써 ‘세무권력’의 남용을 초래할 위험을 내재하고 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여하튼, 형사고발된 후 통고처분을 받았다면 그 처분은 무효이어서 통고처분에 따라 이행하더라도 형사절차에 영향이 없으므로, 통고서의 금액을 납부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3. 범칙사항 기재가 불충분한 통고처분(부산지법 2016가합45536판결)
가. 사실관계
폐유재생업 등을 영위하는 B사는 가공세금계산서 발행 등을 이유로 누락된 6억여원의 법인세 등 부과처분을 받는 한편, 조세포탈을 이유로 B사 및 대표이사 C씨에게 각 3억6천여만원의 통고처분이 내려졌다. B사 및 C씨는 형사처분을 피하기 위해 벌금액을 모두 납부하였으나, 이후 조세심판 절차에서 법인세 등이 과다하게 부과되었음이 판명되어 추징세액에 대한 감액경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B사와 C씨는 기존 추징세액에 근거한 통고처분은 과다하다고 주장하며 과다 납부분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였다.

나. 쟁점
원고들은 통고처분 액수 결정의 원인인 포탈세액에 변동이 있을 경우 이에 근거한 통고처분이 당연무효라고 주장한 사안인데, 법원은 더 나아가 세무관청이 통고처분서의 필수기재 항목인 ‘범칙사항’의 기재가 적법한지 여부에 대해서 심리한 후 통고처분서의 범칙사항란 기재가 불충분한 경우의 통고처분의 효력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판단하였다.

다. 법원의 판단
먼저, 재판부는 통고처분의 원인이 된 조세포탈 및 세금계산서 가공 등의 범칙행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당 세액이 처분청에 의하여 취소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통고처분이 당연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통고서의 범칙사항란에 단순히 “조세포탈 등”, “세금계산서 발급(수취)의무 위반 등”이라고만 기재되어 있을 뿐, 범칙일시나 방법, 포탈세액 등에 관하여 아무런 기재가 없는 경우에는 조세범 처벌절차법 시행령 등에서 정한 절차 규정을 위반한 중대· 명백한 하자가 있어 무효임을 확인하였다.
결국 무효인 통고처분에 기해 납부 받은 벌금상당액은 부당이득이므로 세무관청은 원고들에게 반환하여야 한다.

라. 사건의 의의
통고처분의 근거인 조세범 처벌절차법은 ‘세무서장은 조세범칙행위의 확증을 얻었을 때에는 그 대상이 되는 자에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벌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납부할 것을 통고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나아가 동법 시행령은 ‘세무공무원은 형사소송법에 준하여 문서를 작성하고 송달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통고처분서 기재 방식에 대해 형사소송법을 준하도록 하는 이유는 통고처분이 형식상 행정상 제재이나 실질상으로는 형벌에 해당하는 제재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형사처벌을 구하는 공소장에는 범죄의 일시, 장소와 방법을 명시하도록 하고 있고 공소장 기재가 충분하지 않으면 공소기각 내지 무죄판결이 내려질 수 있다. 이는 피고인의 형사절차상 방어권 행사를 보장하는 취지이다.
본 사건은 형사제재적 성격이 강한 통고처분서 또한 공소장 기재에 준하여 범칙일시나 방법, 포탈세액 등에 대한 기재가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한데 그 의의가 있다 하겠다.

4. 나가며
탈세는 중대 범죄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부모에게 야단을 맞더라도 이유는 알아야 훈계 효과가 있듯, 정확한 설명 없는 처벌은 오히려 국가 권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무기평등의 원칙.’ 소송절차에서 대립당사자에게 그 지위가 평등하고 대등한 공격·방어의 수단과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결과의 정당성은 의심 받기 마련인바, 특히 개인의 신체나 재산에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처분에 있어 개인의 방어권 보장은 공정성 보장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나아가 국가권력과 개인이 대립구조를 이루는 형사처분이나 납세처분 절차에서 국가권력은 미사일에 버금간다 할 것이다. 잘못 쏜 미사일에 무고한 시민이 다치지 않도록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것 또한 국가의 몫이자 의무가 아니겠는가.

 
          [사진 = 법무법인 이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