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정치] 두 번 땜질한 '스프링클러' 의무법…이번엔 제대로 고치나

2010년·2014년 '스프링클러 의무' 시행령 두 차례 개정

때 마다 제도에 '구멍→참사' 반복

국회 "사후약방문 대응 안돼…근본적 대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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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세종병원 화재 현장 합동감식 . [사진=연합뉴스]


177명이 입원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엔 스프링클러(자동 물 분사 장치)가 없었다. 39명의 목숨을 앗아갔지만, 이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건 불법이 아닌 합법적 행위였다.
 
현행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소방법)'에 따르면, 요양병원이 아닌 일반 병원은 '11층 이상 또는 4층 이상, 한 층의 바닥 면적이 1000㎡ 이상'이면 의무적으로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또한, 요양병원·정신의료기관·노인요양시설을 비롯한 노유자 시설 가운데 바닥면적의 합계가 600㎡ 이상인 곳은 스프링클러를, 미만인 곳은 간이스프링클러를 반드시 설치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세종병원은 5층 짜리 건물인 데다 건물 바닥 면적은 층별로 213~354㎡였다. 즉,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대상이 아닌, '안전 사각지대'였다. 
 
◆ 스프링클러, 이미 두 차례 개정했지만 '또 사각지대'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은 이미 두 차례나 개정된 바 있다. 병원시설의 면적과 무관하게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형 참사 때마다 있었지만, 급한 불만 끄는 땜질식 개정은 사각지대를 만들었고 결국 또 다른 대형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관련 기사 [법과 정치] 2017년 12월 27일자 '[法사각지대 제천화재①] 2009년 정부 안일이 火 키웠다' 참조)
 
2010년 11월 12일 새벽 중증의 치매·중풍 환자들이 거주하는 경북 포항 인덕노인요양원에서 불이 나 여성노인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소방법에 따르면 600㎡ 이상 건축물은 고정 소방시설을, 400㎡ 이상은 비상경보시설을, 400㎡ 이하 시설은 소화기만 비치하도록 했다. 인덕노인요양센터는 면적이 387㎡로 소방법상 소화기만 비치하면 법적 문제가 없었다.
 
정부는 그제서야 24시간 숙식을 제공하는 모든 노인요양시설 등 노유자시설에 (간이)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다만,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요양병원은 규정에서 제외됐다. 또 한 번 '안전 사각지대'가 생겼고 대형 참사로 번졌다. 2014년 5월 28일 스프링클러가 전무한 전남 장성 효실천사랑나눔 요양병원에서 화재로 22명이 숨지고 6명이 다쳤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새로 짓는 요양병원(바닥 면적 600㎡ 이상)에는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세종병원은 이 또한 비껴갔다. 병원 특성상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만 화를 당했다.
 

29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에서 박능후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이 세종병원 화재 수습 및 지원 현황 발표 브리핑 중 소방청 이열우 소방정책국장의 내용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정부·국회,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 세분화 나선다

정부와 국회는 또 다시 급한 불 끄기에 나섰다. 중앙사고수습본부는 중소병원 등 다중이용시설의 화재를 막기 위해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을 건물 용도별로 세분화하기로 했다.

중앙사고수습본부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29일 정부세종청사 보건복지부에서 브리핑을 열어 밀양 세종병원 사건 수습 현황을 설명하며 "중소병원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스프링클러와 같은 자동소화설비와 화재신고설비를 강화하겠다. 스프링클러는 건축물의 면적을 기준으로 의무화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건물 이용자의 특성별로 소방기준을 따로 정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새로운 의무사항을 추가할 때 결국은 정부 지원에 대한 논의도 필요할 것"이라면서 "이런 부분은 국회에서 함께 논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같은 날 '땜질식 보수'를 한 데 대한 자성의 목소리와 함께 입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의당대표실에서 열린 상무위원회의에서 "2014년 전남 장성군 요양병원 화재로 21명이 사망한 뒤 보건복지부가 의료기관에 대한 화재 대응 강화 대책을 발표했지만 그 대상이 요양병원으로 한정돼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 의원은 "복지부의 의료기관 화재 대응 강화 대책 대상이 요양병원으로 한정돼 이번 세종병원처럼 중소병원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며 "2016년 기준 전국 병원급이상 의료기관은 총 1851개인데 그중 종합병원 341개를 제외하면 1500개의 중소병원이 화재에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매 번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뒷북 정책이 문제가 되고 있다. 정부는 이번에야 말로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겨울철 화재에 대한 근본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미국이 1973년 발간한 '아메리카 버닝 리포트'를 언급하며 "사후약방문식 (대응이) 아니라 미국의 사례 참고해 종합적인 안전보고서 마련해야 한다"면서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했다. 아울러 추 대표는 "지난해 제천 화재 이후 정부와 국회는 소방관련법 개정안 5건을 처리했지만 아직도 처리해야 할 소방법이 남았다. 지금처럼 대책이 사고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뛰쫓아 가는 것으로는 근원적 해결책을 마련하기 어렵다"면서 "지난 26일 발생한 밀양 화재 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재발을 방지할 근본 대책 마련에 매진할 것"이라며 강조했다.

층별 면적보다 위험의 종류, 재실자의 특성과 화재의 크기에 따라 소방시설 설치에 대한 기준을 분류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일부 의원들은 요양 병원 뿐 아니라 일반 의료시설에도 스프링클러를 의무화하는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 발의를 검토하고 있다. 획일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관련 법을 병원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의료기관에 스프링클러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는 미국처럼 전면 검토·개정하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또한,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지난해 제천 참사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지난 10일 잠자던 법안들을 한꺼번에 통과시킨 법안들이 머물러 있다. △소방기본법 개정안 △소방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