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의 보험금 미지급 농간 막는法②] 소멸시효 기산점·중단 사유 명확히 한다

'보험사고 발생 시'부터 소멸시효 시작은 불합리

독일, 조사 완료되기 전 소멸시효 진행 안 돼

박용진, 보험금 지급여부 확정할 때까지 소멸시효 정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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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사법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자살보험금' 사태의 대법원 판결 이후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에 대한 갖가지 논란이 증폭되자, 20대 국회에서도 입법 정책적인 보완작업이 활발하다. 자살보험금 사태처럼 소멸시효가 지나 보험금을 온전히 받지 못 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소멸시효에 대한 다양한 법안이 계속해서 발의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은 법사위 소위원회에 모두 계류 중이며, 논의를 기다리고 있다.

[법과 정치]는 최근 국회에 발의된 의원들의 입법들과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제도의 입법적 개선방안' 현안보고서를 바탕으로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제도의 △기간 △기산점(기간의 계산이 시작되는 시점) △정지 사유 △설명의무 이행 △사법적 구제수단 등에 대해 현황, 문제점, 개선 방향을 짚어봤다.

◆'아리숭'한 기산점…악용하는 보험사

상법 제662조는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기간에 대한 규정만 두고, 기산점에 대해선 정해진 규정이 없다.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 기산점은 대부분 민법 제166조 제1항 "소멸시효는 '권리(청구권)를 행사할 수 있는 때'부터 진행한다"는 일반 원칙에 따라 운용된다. 대법원은 이와 관련해 2009년 7월 9일 "보험금청구권 보험사고의 발생으로 인해 구체적으로 확립돼 그때부터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므로 그 소멸시효는 달리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민법 제166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해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판시했다.

'보험사고가 발생한 때'라는 모호한 규정은 보험금액을 청구하는 데까지 기간만큼 시효기간이 줄어들어 피보험자 또는 보험수익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보험사고를 수습하고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는 기간까지 일정한 시간이 걸리는데도 보험회사의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는 계속해서 진행되므로 보험소비자는 유예기간 동안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이런 제도적 구멍을 활용해 말 바꾸기 등 갖가지 편법을 썼다. 2016년 자살보험금 사태가 대표적이다. 보험금청구권자들 대부분은 보험회사에 보험금을 청구하고 감독기관에 민원을 제기하는 등 보험금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보험사들은 약관의 내용을 단순 오기 또는 표기상의 실수라고 주장하면서 재해사망보험금의 지급을 거부하다가 소멸시효(3년·2015년 3월 11일 이전에는 2년)가 끝나자 이를 이유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입법조사처는 보험금청구권은 다른 채권과 달리 특수성을 지니므로 보험금청구권 기산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입법조사처는 "보험금청구권은 발생 여부가 외견상 명확하지 않으며 보험회사의 조사 및 지급 결정 절차 등이 필수적으로 수반되고, 일반적으로 보험계약자 측은 보험회사의 지급 결정까지 별도의 조처를 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해서 대체로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이를 고려해 기산점을 유예하다.

◆독일·프랑스는 기산점·중단사유 '명확'…박용진·주승용·민병두 대표발의

독일이나 프랑스는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와 관련해 중단 사유를 보험관계법에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의 중단 및 정지 사유를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독일은 '보험사고 발생 시'를 보험금청구권 시효기간의 기산점으로 보지 않는다. 독일 보험계약법(Gesetz uber den Versicherungsvertrag·VVG) 제14조 제1항은 "보험사고의 확정과 보험회사가 지급할 보험금의 범위를 결정하는데 필요한 조사가 종료된 때에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에 관한 이행기가 도래한다"고 규정했다. 독일 대법원은 이에 대해 "보험사고의 확정과 보험회사가 지급할 보험금액의 범위에 대해 조사가 완료되기 전에는 소멸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입법조사처는 "일괄적으로 '보험사고의 발생 시'로 보는 건 소비자의 인지 여부와 관계없이 소멸시효가 진행되므로 보험계약자 측에서 너무나 불리하다"면서 "보험계약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상법 제658조와 관련해 입법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2016년 7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보험금 지급 청구가 있는 시점부터 보험금 지급 여부에 대한 회신이 있을 때까지 보험금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중단되도록 하는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2016년 11월 21일 정무위원회 소위원회에서 논의됐다. 당시 이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될 시 계정처리를 '잡수익'으로 처리한다는 사실에 개탄하며, "누가 사망하게 되면 요즘은 전산이 다 돼서 바로 사망자 확인이 될 텐데 굳이 청구가 없다고 해서 보험금 지급을 안 한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하루하루 벌어 먹고살기 힘든 사람이 자기 가족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늦게 송고 받을 수 있고, 가족끼리도 보험에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확인도 불가능하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자살보험을 넣었으리라고 누가 생각을 하겠나. 대부분의 시민이 잘 모를 것이므로 일시시효중단은 있어야 한다. 분쟁하다가 시효가 지나면 억울하지 않나"며 개정안 통과에 힘을 실었다.

이와 관련해 정은보 금융위원회부위원장은 "장기보험과 같이 기한이 정해져 있는 경우는 기한이 도과하면 보험회사에서 통보해준다. 하지만 보험금 지급청구는 보험사고가 났다는 것을 통보하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보험사에서 파악하기 어렵다는 제약요건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효의 중단이나 정지의 문제는 상법에 반영되는 것이 타당하다. 법제사법위원회에 주승용 의원이 관련 개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 의원은 지난해 '12월 12일 보험금청구권자가 보험금 지급을 청구하여 보험회사로부터 그 지급 여부에 대한 확정적 회신을 받을 때까지는 소멸시효가 정지되도록'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도 발의한 상태다.

주승용 국민의당 의원은 2016년 7월 21일 보험금청구권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보험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보험금을 받지 못하거나 금융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 신청을 한 경우에는 소멸시효가 중단된다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읠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해당 법안은 아직 소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다만 강병훈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서에서 주 의원 안에 대해 "분쟁조정 신청을 시효중단 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법체계상 일반법인 상법보다 해당 분쟁기구의 근거법령에 소멸시효 중단 사유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고려해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근거 법률인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법률에 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개정안은 분쟁조정을 신청하였다는 사유만으로 소멸시효를 중단하도록 하고 있어 분쟁신청의 기각, 각하, 취소 등의 경우에도 소멸시효가 중단되는 것으로 해석될 우려가 있으므로 이를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며 다소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2월 2일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민 의원은 보험금청구권 소멸시효의 기산점을 '보험계약자 측이 청구권이 발생했음을 알았을 때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었다면 알 수 있었던 때'로 규정했다. 보험금 지급이 유예되는 경우는 보험자의 결정이 서면으로 도달할 때까지 소멸시효가 정지되는 것으로 했다.

민 의원 안 역시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강병훈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은 "소멸시효 제도 취지에 비춰볼 때 보험사고 발생 시로부터 소멸시효가 진행한다는 원칙에 대한 예외는 정의와 형평에 비춰 극히 부당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인정돼야 한다"면서 기산점에 관해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평가를 했다.

아울러 강 전문위원은 "보험금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기와 이행기는 별개의 것이고 보험금 지급 유예기간은 이행기에 관한 것일 뿐 보험금청구권의 행사 시기와는 관계없는 것이므로 지급유예 기간은 소멸시효의 진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현행 판례의 입장"이라면서 '보험금 지급이 유예되는 경우 보험자의 결정이 서면으로 도달할 때까지 소멸시효가 정지되도록' 할 것인지 에 대해서도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