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의 법률이야기] 주취범죄 감형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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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가영 변호사(법무법인 명경) 
입력 : 2017-12-11 15:47
수정 : 2018-01-11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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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008년 아동성폭행으로 처벌받은 조두순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했다는 이유로 감형을 받고, 그 형의 만기로 출소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즉시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 ‘주취감형 폐지’ 청원이 게시됐고, 참여자가 한 달 사이 20만명이 넘었다.

한 달 내 20만명의 청원은 청와대가 공식답변을 하기로 한 기준선임을 감안하면 ‘주취감형 폐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상당 수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우리나라 형법에 ‘주취감형’에 대해 명시적으로 규정된 것은 없다. 형법 제10조 제1항, 제2항에서 심신장애 상태에서 범행한 경우 감면 내지 감경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 예외적으로 같은 조 제3항에서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경우에는 감면 내지 감경하지 않는다고 정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형법의 심신장애로 인한 형 감경 내지 감면 규정이 ‘술에 취해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해 출발한 규정은 아니다.

형법은 인간의 ‘의사결정의 자유’에 주목해 달리 행위 할 능력이 있는 경우임에도 범죄에의 충동을 억제하지 않고 위법한 행위를 한 것에 비난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책임주의 원칙에 따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행위자에게 제대로 된 의사결정을 할 기대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그 책임이 없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한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의 수위를 낮추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주취범죄에 대한 몇 차례의 사회적 환기를 거치면서 주취 범행의 심신미약 등을 원인으로 한 형의 감면 내지 감형에 관한 문제제기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 성과로 2012년 제정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는 형법상 감경규정에 관한 특례를 뒀다.

특례법은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성폭력범죄를 범한 때에는 형의 감면 내지 감경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이 규정은 판사의 재량으로 주취감형도 가능한 ‘임의규정’에 불과하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주취범죄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증가하면서 형법의 심신장애에 관한 감경규정을 그대로 둬야 하는지에 대하여는 의문이 있다.

한국 사회는 상대적으로 음주에 관대하고 회식문화 등 술자리도 빈번해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죄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에서 주취상태에서 저지르는 범죄는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실제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저질러 검거된 건수가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총 3만5707건에 달한다.

또 술에 취해 이뤄진 범행은 오히려 ‘제 정신이 아닌 상태’였던 탓에 그 범행이 잔혹하거나 죄질이 불량한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피해자는 입는 피해의 정도도 심각한 수준이다.

특히 이제는 음주가 자신의 제어할 수 없는 행동, 즉 범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 상황에서 만취상태의 행동이 행위자의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볍게 처벌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사회적 합의가 이뤄질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다행히 법원을 비롯한 실무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돼 음주로 인한 형의 감경은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추세다.

변호사 사무실에 내담한 피담자들은 상담과정에서 일단 자신이 범행 전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넌지시 형의 감경사유가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흉악범들의 주취감형 주장이 법원의 정상참작 사유가 된 것으로 언론에 노출되면서 일단 술을 마시고 범행한 경우에는 심신미약을 주장할 수 있다는 전 국민적인 학습이 진행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이에 대해 술을 마셔서 심신미약 내지 심신상실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본인에게 불리할 수 있다고 충고한다.

심신미약 내지 심신상실의 정도까지 만취하였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성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것으로 보여 법원의 정상참작도 방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상대적으로 피해자의 재판참여기회가 강화된 최근의 형사절차상 피해자는 피고인의 주취감형에 관한 주장을 알게 될 여지가 많아졌다.

이 같은 경우, 통상 피해자는 피고인을 괘씸하게 생각하며 더 강력한 처벌을 바라게 되므로 피해자와의 합의에 이르는데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 피고인의 정상참작 사유로 주취감형 보다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더 큰 실효가 있는 것임에도 말이다.

독일, 미국, 영국의 경우 이미 주취감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하니 이 또한 눈여겨 볼 일이다.

독일은 ‘명정(酩酊)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알코올음료나 기타 각성제를 복용해 명정상태에 있는 사람이 위법행위를 범하고 명정상태로 인해 책임능력이 없거나 책임능력 심사를 배제할 수 없어서 이를 처벌할 수 없는 때에는 5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역시 ‘주취는 범죄의 변명이 될 수 없다’는 판례가 형성돼 주취감형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고무적인 것은, 국회에서도 성폭력범죄 등에 관한 특례법의 개정을 추진 중이라는 것이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저지를 경우 임의적으로 심신장애로 형을 감경하지 못하게 정하고 있던 것을 오히려 범행을 예견하고 자의로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를 야기한 사람에게는 형을 가중하는 안으로 말이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이미 술에 취해서 한 범죄는 감형사유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형법 개정 등을 통해 반영할 필요가 있다. 관련법의 제·개정도 예방적 효과에 그칠 뿐, 주취범행방지의 효과가 대단할 것으로 기대되지는 않는다.

지난 한 해의 수고를 술로 달래고, 새로운 한 해를 시끌벅적한 술자리로 맞을 연말연시가 목전이다.

술에 취해서 한 범죄를 한낮 실수로 치부해버리는 분위기를 깨버리는 것이 주취범죄를 막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한국 사회의 지나친 음주문화에 대해 뒤돌아 봐야할 때다.

[신가영 변호사(법무법인 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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