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로 보는 세상] 기간제 등 단기근로자 양산이 답인가, 고용시장 유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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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지인과의 약속으로 종로로 향하던 일요일 오후, 꽉 막힌 도심이 예사롭지 않다. 무슨 일인가 하고 인터넷을 뒤져보니 전태일 열사 47주기 기념 노동자 집회가 열리는 날이다. 대학시절 그 흔한 데모에도 참가할 용기가 없던 필자에게 이런 집회는 항상 ‘경외(敬畏)’의 대상이었고 그 ‘외주(外周)’에 머물 뿐이었다.

이런 필자도 직장인, 혹은 변호사로 노무분쟁을 자주 접하며 노사관계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다보니 노동문제에 대한 이벤트나 인사들의 발언에 눈과 귀가 가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르겠다.

‘적폐 청산’이라는 생소하고 무겁던 용어를 외치는 집회를 보며 무엇보다 먼저 ‘계약직 신분자’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노동현장에서 이들과 관련된 노사문제가 가장 빈번히 발생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에 기간제근로자의 갱신기대권에 대한 최근 대법원 판례와 무기계약직에 대한 차별을 다룬 하급심 판례를 통해 단기근로자들의 무기계약직 내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험난한 여정(대법원 2014두45765 판결)과 무기계약직이 돼서도 ‘후남이’ 대우를 받고 살아온 이야기(서울남부지방법원 2014가합3505 판결)를 풀어본다.

2. 기간제근로자의 갱신기대권
(2016. 11. 10. 선고 2014두45765 부당해고구제재심판정취소)

1) 사실관계

실업자의 사회적 일자리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재단법인인 원고는 A씨와 2년의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A씨에게 기부자관리팀장, 운영지원홍보팀장 등의 직책을 부여했다. 그러던 중 원고는 A씨의 계약기간 만료가 임박한 시점에 A씨에 대해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이에 A씨는 그간 사정들에 비춰 자신에게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권이 인정됨에도 원고가 합리적 사유 없이 일방적으로 근로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원고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일명 기간제법)’ 시행 이후이므로 갱신기대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2) 판결요지

재판부는 단기근로자의 경우 기간만료로 근로관계가 종료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근로계약, 취업규칙 내지 근로관계를 둘러싼 여러 사정 등에 의해 근로계약이 갱신된다는 신뢰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사용자가 부당하게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은 부당해고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효력이 없다는 기존의 입장을 확인했다. 나아가 200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기간제법의 취지가 기간제 근로계약의 남용을 방지함으로써 근로자의 지위를 보장하려는 데에 있으므로 기간제법 시행으로 갱신기대권이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고 판시했다.

위 사건에서는 원고 회사가 그간 기간제 근로자를 일정 요건에 따라 정규직으로 전환해 온 사실 등에 비춰 A씨에게 갱신기대권이 인정되고 A씨에 대한 합리적이고 공정한 인사평가 없이 계약만료 통보를 한 것은 부당해고로 효력이 없다고 했다. A씨의 기간제법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되게 된다.

3) 판결의 의의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에 대한 해고를 제한하고 있으며 경영상 이유로 해고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계약직 근로자들을 채용하여 단기 사용 후 ‘폐기’하는 관행이 누적돼 왔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해고의 자유와 고용비용 절감이라는 두 가지 실익을 얻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계약직 근로제도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것이 기간제법이다. 이러한 기간제법이 근로자들이 일회용품으로 취급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인 갱신기대권을 제한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데 본 판례의 의미가 있다 하겠다.

3. 근로자에 대한 차별처우금지
(서울남부지방법원 2016. 6. 10 선고 2014가합3505 판결)

1) 사실관계

피고는 방송사업을 영위하는 회사로 근로자의 직군을 업무직, 일반직 등으로 분류하고 채용절차와 보직 부여 등을 달리 했다.

이를 이유로 양 직군 간 보수규정을 별도로 두고 일반직에게만 주택수당, 가족수당, 식대를 지급하고 업무직인 원고들에게는 지급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기간제 근로자로 입사다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업무직으로 분류됐다.

원고들은 업무직에게 이러한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이 금지하는 차별적 처우라고 주장했다.

피고는 이에 대해 업무직과 일반직에 따른 지위는 근로기준법이 차별처우를 금지하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며 나아가 일반직과 업무직 간에 채용형태, 업무난이도, 승진가능성 등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으므로 수당의 차이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쟁점은 근로기준법 제6조의 ‘사회적 신분’의 의미가 무엇인지라고 할 수 있다.

2) 판결요지

1심 재판부는 “직업 뿐 아니라 사업장 내의 직종, 직위, 직급도 상당한 기간 점하는 지위로서 사회적 평가를 수반하거나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 자신의 의사나 능력발휘에 의해서 회피할 수 없는 사회적 분류에 해당하는 경우 사회적 신분이라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또한 “이 사건과 같이 채용절차 단계에서부터 각자의 직역이 결정돼 자신의 의사나 능력과 상관없이 일반직처럼 보직을 부여받을 수도 없고, 직급승진도 할 수 없는 구조에서 업무직이라는 고용형태는 사회적 신분에 해당한다”고 봤다.

나아가 양 직군의 업무내용과 범위, 업무 양이나 난이도, 회사에 대한 기여도 등에서 차이가 없을 뿐 아니라 문제의 수당은 업무 성격 등과 상관없이 지급되는 점 등을 들어 차별에 합리적 이유도 없다고 판시했다.

3) 판결의 의의

이 판결은 회사 내 직군이 일정한 사회적 분류에 해당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사실상 무기계약직 근로자를 일반정규직 근로자와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던 관행에 제동을 건 사례다.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있어 결론이 뒤집힐 가능성도 있으나 그간 성별, 출신지역 등 전통적인 차별이슈에서 이제는 근로형태에 따른 사내 차별이라는 이슈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계기를 마련한 데 이의가 있다고 본다.

4. 나가며

경제구조개혁에 일순위로 지적되는 한국의 고용시장 경직성을 빌미로 단기근로자 양산을 합리화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고용계약은 일반적인 물건을 사고파는 계약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좌지우지 하는 ‘인간의 노동’을 목적으로 하는 계약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근 진통을 겪었던 최저임금인상 문제도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으며 세상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최저가격 제한제도가 최저임금제도라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근로자 중 기간제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12%이고 300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그 비율이 약 19%(2016년 4분기 기준)에 해당한다고 한다.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우리 모두 나눠야할 곤궁을 12%의 동료들에게 소위 ‘몰빵’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황은정 변호사(법무법인 이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