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의 법률이야기] 혼인의 자유를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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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원치 않는 결혼한 신부의 극단적 선택에 17명이 목숨을 읽은 해외토픽을 접하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살인까지 해서 자유를 얻으려한 신부의 사정이 딱했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에서 부모의 강요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신부가 남편을 살해하려다 남편의 친척 등 모두 17명을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결혼한 지 한 달 정도 된 20살 어린 신부는 애인이 있던 상태에서 강제로 다른 남성과 결혼한 후, 여러 차례 이혼을 시도했다.

그러나 자신의 부모와 남편에 의해 계속 좌절되자, 애인이 가져다준 독극물로 남편을 숨지게 하려고 마음을 먹게 된다.

우유에 독극물을 타서 남편에게 건넸으나, 남편은 이를 먹지 않았고 다른 곳에 놔뒀고 이런 사실을 모르는 남편의 어머니가 이 우유로 요구르트를 만들어 친척과 주민들에게 돌린 것이다.

독극물 요구르트를 마신 사람은 모두 27명이며, 이 가운데 지금까지 17명이 숨지고 나머지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정작 여성의 남편은 무사하다고 하니, 신부는 목적 달성도 하지 못한 셈이다.

이 사건을 우리나라 법제에 대입해보면 어떨까. 형사적으로는 어린 신부의 친정부모는 강요죄, 남편은 감금죄, 강간죄 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또 신부와 신부의 애인은 남편에 대한 살인미수죄, 17명에 대한 과실치사상죄의 죄책이 걸린다. 이렇게 복잡한 형사적 문제는 차치하고, 신부가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한다면 승소할 수 있을까?

혼인의 자유는 헌법 제36조 제1항 혼인가족제도에서 도출되는 기본권이다. 혼인의 자유는 물론 미혼, 비혼, 동거, 동성혼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법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데 있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 사법통계 연감에 따르면 2006년 이래 혼인의 무효·취소 소송의 건수가 매년 1000건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지난 6월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27살이던 젊은 시절 교제하던 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여성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가, 이듬해 법원에서 혼인무효판결을 받았다는 사실로 자진사퇴한 것을 보면 혼인의 자유를 보장받지 못한 ‘강제결혼’의 피해자가 상당해 보인다.

혼인의 무효와 취소소송의 건수가 상당하다 하더라도, 실제로 인용되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용된 예를 소개하면, △결혼에 대한 합의 없이 단지 비자연장을 위해 필요하다며 서류를 제공받아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했다가 협의이혼신고까지 한 사안에서 혼인 및 이혼이 모두 무효라는 판결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외국인과 혼인신고를 하고 한국에 같이 입국했으나, 입국한 지 한 달 만에 상대방이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결혼했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가출한 사안에서 법원은 상대방에게 혼인의사가 없었다고 혼인이 무효라고 판단 △혼인신고 당시 부부로서 동거하고 있었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합의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혼인신고 자체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해 이뤄진 것이고 상대방이 그 혼인신고를 추인한 바가 없다면, 그 혼인신고로 인한 혼인은 무효라고 한 사례 등이 있었다.

이와 반대로 △장난삼아 혼인신고서를 써 줬는데 상대방이 몰래 시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한 경우, 혼인무효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한 외국 여성이 결혼 후 1년이 지나서야 입국하고 입국 과정에서 돈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입국한지 3개월도 되기 전에 출국했더라도, 혼인의 의사가 없었다고 볼 수 없다고 남편의 혼인무효 청구를 기각한 사안 △10년 이상 사실혼관계를 맺고 동거해 온 60대의 동거남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동안 동거녀 혼자 혼인신고를 한 사안에서 혼인신고는 유효하다는 판결도 있었다.

혼인무효·취소소송이 속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신고’만으로 혼인의 효력을 발생하게 하는 민법의 규정이 문제”라며 ‘부실한 혼인신고제도’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한국 혼인신고제도는 담당공무원의 형식적 심사권 밖에 없어 위장결혼을 미리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상대방의 신분증과 도장만 있으면 일방적인 혼인신고가 가능하다. 신랑·신부가 최소 한 명씩 증인을 세워야 하지만 미리 준비한 제3자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지를 써넣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주민센터 직원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도장이 진짜 배우자의 것인지 확인하는 절차도 없어 ‘막도장’을 만들어 찍으면 된다.

2007년 5월 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신분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상대방 이름과 주민번호 등 인적사항만 알면 일방적인 신고가 가능했다.

혼인신고의 법적문제를 개선해 혼인무효·취소소송을 예방하기 위해 혼인당사자의 출석의무제를 도입도 검토해볼만 하다.

실제로 우리나라와 일본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서 혼인당사자 쌍방이 혼인등록기관에 출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당사자 두 명과 증인이 모두 출석해 공무원 또는 판사 앞에서 혼인 의사를 확인하고, 혼인으로 발생하는 의무에 대해 설명을 듣는 과정이 필수다.

섣불리 결혼을 결정해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국제결혼의 경우라면, 외국인 배우자가 국제혼인신고를 위해 국내에 입국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현지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출석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아울러 한국과 국제결혼이 빈번한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주요 국제혼의 상대국의 혼인제도 모두 혼인허가 신청 시 또는 혼인등록 신청 시 혼인등록기관에 양당사자가 함께 출석하도록 하고 있어 상호주의 관점에서도 더 합리적이라고 한다.

혼인신고 시 혼인 당사자를 출석시키는 것을 새로운 부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결혼과 같은 인륜지대사의 사회적 중요성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의 부담은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다.

[임희정 변호사(법무법인 명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