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의 법률이야기] 갈수록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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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가 범죄에 이용됐으니 즉시 예금을 인출해야 한다', '정부지원으로 가벼운 금리, 최대 1억까지, 더 간편하게'

국민 대다수가 한 번쯤은 이런 내용의 문자를 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일부는 전화를 통해 이런 내용을 들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십년 넘게 계속된 사회문제다. 아직까지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실제로 최근 5년 간 전화사기, 일명 보이스피싱 범죄는 총 9만54건이 발생했다. 피해금액만 7875억원에 이르고 있다. 경찰청이 작성한 '2013년 이후 보이스피싱 범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연도별로 2013년 2만1634건에서 지난해 1만740건으로, 피해금액 역시 2013년 1429억원에서 2016년 1051억원으로 분석됐다.

전체 보이스피싱 범죄 중 대출사기형의 발생건수는 6만4474건(피해금액 4313억원)으로 전체 발생건수의 71.5%를 차지했다. 수사기관 등을 사칭해 돈을 가로채는 기관사칭형은 2만5580건(피해금액 3562억원)이었다.

이런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해 이제는 대다수 국민들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위 조사결과에 따르더라도 수사기관을 사칭하는 보이스피싱 건수와 피해금액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 수법은 더욱 지능적이고 교묘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근 들어선 보이스피싱 조직이 일반인을 속여 자신도 모르게 보이스 피싱 범행에 가담케 하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필자가 형사실무에서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경험해 본 결과, 몇 년 전만 해도 범죄자들은 처음부터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범죄수익을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일용직 아르바이트를 모집한다는 문자에 속아 일당을 받기 위해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전달하다 체포되거나, 대출을 위해 실적을 쌓는다는 생각에 자신의 계좌로 입금받은 피해금을 인출해 전달하다가 공범으로 입건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업체에 일용직으로 근무한다는 생각에 일을 시작했다가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사안이 있다.

A씨는 채용정보 사이트에서 '모 캐피탈'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아르바이트 지원을 했다. 그는 정상적인 업체인 줄로만 알고 다른 사람이 현금을 주면 이를 다른 곳으로 송금해 주고 일당을 받는 일을 했다.

근로 초기부터 업체 측은 A씨에게 '곧 근로계약서를 써 주겠다', '곧 4대 보험에 가입시켜 주겠다'는 말을 했고 이를 들은 A씨는 정상적인 업체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이렇게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되기 시작해 두 달여간 일을 하면서 자신이 일하는 업체가 정상적인 업체가 아니고 보이스 피싱 조직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하지만 A씨는 자신의 신상정보가 모두 노출된 상황이라 겁을 먹어 범행을 그만두지 못 하고 범행을 계속했다. 결국 그는 보이스피싱 사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고, 이후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A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인터넷 사이트에 정상적인 업체인 듯 채용정보를 올렸다. 이후에도 근로계약서, 4대 보험 가입 등을 운운하며 정상적인 업체인 듯 A씨를 속였다는 점과 A씨가 얻은 수익은 일당에 불과한 점 등이 참작돼 재판에서 이례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석방될 수 있었다.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것이다.

자신의 계좌가 보이스피싱 범행에 악용돼 곤욕을 치른 사례도 있다. 급전이 필요했던 40대 회사원 B씨는 '금융권 거래실적을 쌓게 해주겠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업체에 연락을 했다.

업체에선 흔쾌히 대출을 해주겠다고 하면서도 '가상의 거래내역을 만들어 대출조건을 맞춰야 한다', '일단 우리 자금을 당신 계좌로 보낼 테니 인출해 직원에게 전달하라'며 B씨의 계좌번호를 받아갔다.

이에 B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입금된 돈을 인출해 업체의 직원이라는 사람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B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자신의 계좌번호를 알려준 뒤, 이 계좌로 들어온 사기 수익금을 인출해 범행 조직원들에게 전달한 혐의로 기소됐다.

알고 보니 대출업체를 가장한 보이스피싱 일당은 다른 피해자들에게 '당신 명의가 타인의 사건에 도용됐으니 계좌에 있는 잔고를 불러주는 금융감독원 관계자의 통장으로 돈을 보내라'고 속여 B씨의 계좌로 입금 받는 형태로 사기를 범한 것으로 조사됐다.

결국 검찰은 B씨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사기 범행을 용이하게 해 방조했다며 형사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B씨가 어떤 불법적인 행위나 범죄에 가담하거나 이를 돕는다는 막연한 예상을 넘어 보이스피싱 사기를 용이하게 하는 것이라고 인식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B씨의 경우 무죄를 선고받기는 했지만, 보이스피싱 범죄자로 수사기관의 조사를 받고 형사재판을 받는 곤욕을 치렀다.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한 경우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이 최근 추세다. 보이스피싱 범죄는 그 특성상 공범 간에도 서로를 알지 못 하고 구체적인 범행방법 전체를 알 수 없다는 이유로 단순 가담자의 경우에도 보이스피싱 조직원으로 보아 엄벌에 처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단순히 일당을 받고 비자금을 전달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현금을 전달하다가 중형에 처해지거나 자신의 계좌를 빌려 주었을 뿐인데도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최근 보이스 피싱 조직은 사회적으로 곤궁한 처지에 있는 구직자나 대출 희망자를 속여 자신의 범죄에 이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법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법언이 있듯이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범행에 가담했다고 하더라도 처벌을 피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은 신원을 알 수 없는 문자나 전화에 대해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관계기관은 선량한 일반인들이 범죄자의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이런 신종 수법에 대한 홍보와 관련 계도에 힘써야 한다.
 

[김재윤 변호사(법무법인 명경)]